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300 라디오

by 조이진

라디오

1913년 파리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어쩌면 유럽 클래식 음악에서 마지막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세계음악의 판도가 바뀌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고, 전쟁과 함께 세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럽을 철저히 파괴한 전쟁이 끝난 뒤 교황은 더는 규칙 설정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왕의 권위도 미약해졌다. 자본가인 부르주아의 권력과 영향력이 그들이 비운 공간을 대체했다. 새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그 변화의 중심이었고, 미국이 발명한 전기와 라디오, 그리고 녹음 기술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다. 영화를 바꾼 전자 기술은 모든 것을 기계로 바꾸었고, 음악도 바꾸었다. 라디오는 투명한 공간을 이용해 소리로 만들어냈다. 전자 기술은 소리의 세계에서 어쿠스틱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하층민들은 소비할 수 없는 신문과 달리 라디오는 글을 몰라도 듣고 즐길 수 있는 미디어였고, 그래서 평등한 미디어였다.

라디오는 미디어 혁명을 이루었다. 라디오는 오늘날 인터넷정보 혁명만큼 세상을 크게 바꾸었다. 라디오는 쿠바의 정치도 바꾸었다.

라디오 가게 앞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신기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모았다.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신문과 달리 라디오는 음악도 뉴스도 공짜로 들려주었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주요 소비 상품으로 떠오른 커피를 사 마시라는 광고들이 음악과 뉴스를 무료로 틀 수 있게 방송국들에 돈을 댔다. 라디오가 발명되기 전에는 음악이라면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었고 작곡가들은 악보를 팔았다. 전자 기술의 라디오는 음악의 주도권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져왔고, 라디오는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음악을 내보내고 창작자들은 악보 대신 LP를 팔아 훨씬 큰돈을 벌었다. 이 음악 산업의 혁명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꽃 광고와 동기화되었다. 라디오 방송국으로서는 클래식 음악보다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내보내야 청취율이 높아지고 그럴수록 광고가 많이 붙어 수익성 좋은 방송사가 될 수 있었다. 자본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라디오 방송을 흑인의 쏘울이 가득한 재즈로 채우게 했다. 전기는 밤의 풍경만 바꾸지 않았다. 증기기관차와 자동차는 속도의 개념을 바꾸었고, 전자 기술은 생활을 변화시켰고 젊은이들의 시선의 주제는 늘 내일이었다. 비행기는 공간 개념을 바꾸었고, 공업화되고 있는 도시의 풍경, 폭력과 범죄 같은 것들도 어제와 달라졌다.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를 그려 시작한 새로운 인상파 회화의 빛과 색도 50년 만에 벌써 낡은 개념으로 퇴색했고, 추상 화가 중에는 소음마저도 회화로 표현한다는 작가도 나타났다. 영화도 이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소수의 귀족과 부유층이 주도했던 예술, 문학이 다수 대중이 주도하는 대중의 문화로 바뀌었다. 미국화의 모습이었다. 국제정치에서는 국민주의 또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강대국에서 이탈 분리하는 추세가 일었다.

음악이야말로 라디오 시대에 가장 적합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였다. 고달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위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돈을 들이지 않고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디오를 좋아했다. 라디오는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을 시간에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방송했다. 아직 클래식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을 하는 백인 뮤지션은 드물었으므로 라디오 방송에 필요한 음악 콘텐츠를 녹음할 수 있는 가수들은 대개 가난한 흑인들이었다. 흑인들은 재즈와 블루스 같은 곡을 연주했으므로 흑인 음악이 송출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구매력이 없는 흑인들이나 많이 듣는 방송국이 되어서는 기업의 광고를 유치할 수 없었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라디오 방송은 흑인 음악보다는 미국의 휴양지, 미국인의 파라다이스라는 이미지를 가진 이국적인 섬 쿠바의 음악을 방송하는 편이 유리했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는 구매력 있는 백인 청취자를 목표 집단으로 한 광고 유치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의 라디오 혁명에서 쿠바 음악은 매우 중요한 콘텐츠였다.

리타 몬타네르. 라디오 시대가 음악 콘텐츠를 요구했고, 리타는 라디오 시대 최초의 스타였다.

1922년 쿠바에서도 첫 상업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쏘았다. 미국의 첫 상업 라디오 송출보다 2년 늦었다. 쿠바 대통령은 나랏돈을 훔치다 잠깐씩 짬을 내 개인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연설했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연설은 전화선을 타고 뉴욕으로 연결되어 라디오로 송출되었다. 그때 쿠바에서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수신기가 100대도 보급되지 않았다. 정치 연설이 끝나면 리타 몬타네르가 노래를 불렀다. 신인가수 리타는 라디오로 데뷔했고, 라디오가 탄생시킨 최초의 라디오 스타였다. 음원이 부족했던 라디오 방송 초기에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송출했다.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면 쿠바의 댄스 뮤직인 단존을 송출했다. 귀엣말로 소곤대듯 하는 소리를 내는 라디오 방송은 취주악기가 많이 편성되어 노이즈 레벨이 높은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의 운명을 단축했다. 취주악기 오케스트라에 의존했던 단존 장르도 소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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