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소셜클럽
소셜클럽
미국에서는 라디오가 미디어 혁명을 주도하고 음반을 투자·제작·배급·판매하게 된 거대해지는 음악시장은 산업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따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라디오 방송사는커녕 아직 녹음실 스튜디오도 하나 없었다. 쿠바 뮤지션들은 여전히 댄스홀에 생계를 의지했다. 베다도와 미라마르 같은 부자들의 신도시에 소셜클럽이 많이 들어섰다. 클럽은 인종과 피부색을 기준으로 회원을 골라 받았고 민족, 국가, 고향 단위로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스페인계, 유대계, 독일계, 중국계, 아랍계, 미국계 등으로 소셜클럽을 만들었다. 같은 업계의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클럽도 있었고, 재산 규모에 따라 소속할 수 있는 클럽도 달랐다. 쿠바 사회에서 다시 주류가 된 스페인계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출신지 이름까지 포함할 정도로 지연을 중시한 사람들이다. 특히 카탈루냐, 나바라,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에서 온 부유한 바스크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크고 호화롭게 출신지별 소셜클럽을 만들고 회관 건물을 지었다. 소셜클럽에서 바스크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춤을 추고, 아스테 나구시아Aste Nagusia명절을 즐기고 고향의 춤과 음악, 전통 스포츠를 와인과 바스크 음식을 함께 먹고 마셨다. 회관에는 5,000쌍이 동시에 춤을 출 수 있을 댄스장이 있었고 전속 밴드가 상주했다.
스페인 맥주회사<라 트로피칼La Tropical>이 운영한 소셜클럽은 화려한 건물과 정원으로 미 군정기에 가장 유명한 소셜클럽이었다. 1920년대에는 폴라맥주가 운영하는<폴라맥주 정원Jadrines de Cerveza Polar>라는 15,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소셜클럽이 문을 열었다. 소셜클럽에서는 대개 단존에 맞추어 밤마다 아바네라와 룸바를 추었다. 그러다 가끔 손 밴드를 고용해 연주하게 했다. 부유한 사람들의 소셜클럽이었으니 밴드에 주는 공연료도 두두룩했다. 가난한 뮤지션들이 베다도의 소셜클럽으로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