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트로바도르
트로바도르
시가는 18세기말부터 쿠바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쿠바의 고급 시가는 공장에서 손으로 직접 말아 생산된다. 담배를 마는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달리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흑인들로서는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시가 공장은 좋은 일자리였다. 지루함을 달래주면 생산 능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 공장주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작업 시간 도중에 책을 읽게도 했지만, 흑인 노동자들은 책보다는 노래 부르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노동자 가운데는 퇴근 후에 기타를 들고 도심으로 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이발소 면도사, 신발공장 노동자, 구두닦이도 밤에는 부업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 유럽이었다면 보헤미안이라 불렸을 이들이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며 떠돌아다녔다. 중세 스페인에서는 떠돌며 노래하는 공연자를 후글라르 또는 트로바도르라 불렀다.
1920년대가 시작되면서 기타가 쿠바에서 부상했다. 1860년대 후반 스페인의 안토니오 토레스 후라도가 토레스가 오늘날처럼 개조하기 전에 기타는 울림통이 작았다. 넓은 무도회장이나 야외에서 쓰기에는 음량 표현이 작아 큰 연주 홀을 울려주지 못해 고전 음악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기타 작곡을 외면했다. 스페인의 쪼그라진 국력도 기타를 외면하게 한 이유였다. 토레스는 울림통을 키우고 기타 현의 길이도 늘이는 등 규격을 개량해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향을 크고 작은 음량으로, 화음의 결도 다양하게 낼 수 있게 했다. 17세 소년의 기타 연주를 들은 토레스는 한 해 최대 12대만 만들었던 기타 한 대를 선물했고, 이 명품의 소리에 영감을 받은 소년은 피아노를 포기하고 기타에만 집중했고, 안드레스 세고비아와 같은 기타 명연주자들을 가르쳤다. 토레스의 기타를 선물 받은 소년이 프란스시코 타레가다. 토레스와 타레가, 그리고 세고비아로 이어진 기타는 곧바로 유럽 최고의 악기 반열에 올랐다. 타레가가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을 때 스페인은 정치적으로 무척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도 곤란했다. 공산주의와 함께 인간 위에 군림하는 모두 조직이나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무정부주의가 토지 없는 가난한 자들의 유럽을 떠돌았다. 그런 1910년대부터 힘겨운 자들에게 위로를 준 유일한 악기가 스페인에서는 기타였다.
쿠바로 건너온 기타는 노예 상태와 다름없는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에게도 위로를 주었다. 신도 가레이는 아들과 기타를 메고 쿠바 전역을 돌아다니며 듀오로 노래했다. 레스토랑에서도 노래하기도 했고, 바구니를 앞에 두고 길거리에 앉아 노래하기도 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하듯 노래하며 아버지는 화음을, 아들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가사를 불렀다. 이들이 쿠바 최초의 트로바도르였다. 12세기 이베리아에서 레콘키스타의 전쟁 영웅 엘시드의 무용담을 노래 부르던 바스크 문학과 음악적 전통이 쿠바에서 신도 가레이 부자에 의해 되살아났다. 뒤이어 잇달아 등장한 사랑스러운 목소리의 마리아 테레사 베라 같은 트로바도르는 시처럼 아름답게 정제된 노랫말을 불렀다. 은유적으로 절제된 가사는 원숙했고 일상의 말투인 듯 가벼워 듣기에 편안했고 리듬과 어울리도록 잘 다듬어졌다. 가수들은 신선하고 새로운 표현을 찾아내려고 노력했고 전혀 교육받지 못한 거리의 흑인 가수들이었지만 이들이 사용한 표현들은 문학적으로도 부족함이 있다 할 수 없었다.
트리오 마타모로스가 두 대의 기타로만 연주하던 손을 마라카스, 클라베 같은 다이노 전통악기의 음악적 요소와 융합해 냈다. 코드를 뜯어 연주하던 대다수 손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플러킹 하는 바로크 시대의 연주 기법을 사용했다. 18세기 아바나에서 다이노 음악과 스페인 문학 양식을 융합한 장르인 푼토 과히로 스타일을 기억해 다시 불러냈다. 쿠바 뮤지션들에게 그런 음악은 익숙한 스킬이었고 마타모로스는 손보다 더욱 낭만적인 트로바 스타일의 시어를 붙여 노래했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마타모로스의 첫 인기곡은 <엄마, 저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래요Mamá, Son de la Loma>이었다. ‘저렇게 멋진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밴드 가수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요, 나도 저들의 노래를 배우고 싶거든요’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과 느낌을 노래한 곡인데, “저 사람들은Son”으로 시작하는 마타모로스의 노래 스타일을 “손” 장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쿠바에서 ‘산’은 산티아고 데 쿠바가 있는 오리엔테의 시에라 마에스트라산맥을 의미한다. 스페인에 저항하다 산으로 들어간 다이노의 씨마루아보들이 살았고, 플랜테이션에서 도망친 흑인들이 다이노의 품에 들어간 마을 팔렌케가 있었고, 스페인에 무장 독립 투쟁한 해방군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 시에라 마에스트라요 산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내려온 곳도 이 산이다. 이 산에서 쿠바인들은 음악을 했다. 클라베와 마라카스, 기러처럼 단순하되 강렬한 비트를 내는 악기로 싱코페이션을 만들어내는 다이노의 리듬과 스페인의 유럽 악기, 그리고 바스크와 아랍의 문학, 아프리카의 드럼과 신앙과 춤이 뒤섞인 음악은 산에서 계속되어 왔다. 산티아고 출신인 마타모로스 밴드는 이 곡의 가사에서 자기들의 음악은 그 산에서 하던 음악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전하고 있는 ‘손’의 이중적 의미는 쿠바 음악의 가장 중요하고 전형적인 특징과 쿠바 음악이 발산하는 매력과 발랄함의 근원을 다 담고 있다. 그래서 쿠바 사람들은 산티아고와 오리엔테에서 현대 쿠바 음악이 태동했다고 생각한다. 이 곡은 쿠바뿐 아니고 세계에서, 특히 뉴욕에서 크게 히트했다. 트리오 마타모로스의 음악은 부드럽고 신사적이며 자음과 모음의 변화가 듣기에 편안했고, 완전히 쿠바적인 감성을 느끼게 했다. 이들의 음악은 이전 트로바도르들의 음악보다 호소력 있는 메타포와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음악을 하면서도 촌스럽지도 않았다. 마타모로스가 작곡한 <검은 눈물 Lágrimas negras>(1928)는 볼레로와 손이 처음으로 융합한 곡이다. 마라카스가 리듬을 주도하는 손에 볼레로가 완벽하게 조화된 손-볼레로의 명곡으로 꼽힌다. 이 곡은 트레스, 기타와 함께 봉고와 트럼펫, 다이노 악기 마라카스 같은 손 음악의 기본 편성으로 조화롭고 부드럽게 연주되었다. 봉고와 트럼펫이 있는 손 7중주단은 앰프 없이도 소셜클럽의 무도장에서 충분히 큰 사운드 효과를 만들어냈다. 댄스 클럽에서라면 손 밴드와 경쟁할 음악 형식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 소곤대듯 하는 라디오가 새로 발명되었고 그렇게 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밴드 음악은 이내 구식의 음악이 되었다.
클라베 필feel이 통합해 주는 손은 그 유연한 형식으로 어떤 장르의 리듬과도 잘 어울렸다. 1920년대에 모든 쿠바인들은 손 댄스에 빠졌다. 여러 음악 장르가 처음에는 과이라-손, 과라차-손처럼 손 장르를 받아들여 응용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하게 손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그렇게 하여 손은 오늘날까지 모든 쿠바 음악을 대표하는 장르가 되었다. 쿠바의 트로바도르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서정적인 쿠바 볼레로를 노래했다. 본디 스페인의 민속 춤곡이었던 볼레로는 스페인에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멕시코로 건너간 볼레로는 사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표현하는 발라드로 변했다. 피크를 쓰지 않고 두 대의 기타 듀오가 연주하며 시적인 노래를 부르는 쿠바 볼레로는 스페인 문학의 형식과 멕시코 볼레로의 톤과 무드에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