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312 바티스타

by 조이진

바티스타

총탄이 동체에 부딪혀 튀는 소리와 함께 마차도의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부터 쿠바의 현재와 미래는 세 개의 축이 결정할 것이었다. 쿠바 국민과 군부, 그리고 미국이 그 세 축이었다. 미국이 쿠바의 통치 공백 상황을 관리할 인물로 세스페데스를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세스페데스는 지금 같은 혁명적 상황을 감당할 깜냥은 못되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면 지갑에서 누군가의 사진을 꺼내 혼잣말하며 의견을 묻고는 했다. 사진 속 인물은 쿠바 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세스페데스였다. 그가 아버지 세스페데스에게 자주 의견을 여쭙는다고 해도 아들 세스페데스에게는 미국 대사의 영향력이 훨씬 절대적이었다. 미국 대사가 허락하지 않은 자는 내각의 각료로 지명되지 못했고 크고 작은 일도 결정해 주었다. 사석에서 미국 대사는  쿠바 정부를 운영하는 모든 짐이 제 어깨에 올려져 있으니 힘에 부친다고 너스레를 놓곤 했다. 권한대행인 세스페데스에게 미국 말고는 그를 떠받칠 지지 세력도, 정권의 합법성도 없었다. 그러니 마차도의 비행기가 뜬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은 부서졌다. 경제는 버둥거렸고 군부는 크고 작은 거사를 멈추지 않았다. 마차도를 타도한 민중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소요도 또한 멈추지 않았다. 민중들은 미국 대사를 마차도의 뒤를 이은 새로운 독재자로 간주해 적대시했다. 학생들은 미국이 쿠바에 걸어놓은 코뚜레를 풀어 없애는 것이 애국이요 의무라고 연설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한 설탕 노동자들은 파업과 함께 설탕공장을 점거했다. 부두의 짐꾼 노동자도, 신발 공장노동자도, 빵 공장에서도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을 이어갔다. 아바나 대학생들은 세스페데스 정권이 마차도를 타도한 민중의 개혁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개입주의에 순응하지 않을 정부를 새로 구성할 것과 토지를 국유화해 땅 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것과 여성의 투표권도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의 압력과 간섭 없이 만들어지는 헌법을 다시 제정할 것도 요구했다. 마차도의 비행기를 이륙시킨 것은 혁명의 시작일 뿐, 쿠바의 진짜 혁명은 이제 시작되었다.

images (1).jfif 쿠데타를 일으킨 바티스타 상사. 지독한 독재가 다시 시작되었다.

 

세스페데스 정부가 마차도의 손발이었던 군부 인사 수 십 명을 체포하기는 했어도 국민은 그 정도로는 군부 개혁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 마차도에 반대했던 군인들은 아직 복직하지 못했다. 마차도 정권에 협력한 군인의 처벌 문제가 장교와 부사관 사이에, 또 나이와 피부색 등으로 얽힌 오랜 긴장을 악화시켰다. 아바나를 지키는 부대에 속한 한 무리의 부사관들이 몇 주째 회합하고 크고 작은 불만을 토로하면서 정부와 군 당국이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해 왔다. 처우를 개선해 달라던 부사관들이 마차도가 축출당한 일을 계기로 빠르게 정치적 야망을 키웠다. 부사관들과 상등병들은 군 지휘관들에게 제출할 요구사항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아바나를 인근 군부대의 극장에서 밤 8시에 모였다. 장교들이 모두 퇴근해 부대 안에는 장교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라도 거사를 일으킬 수 있었고, 시도하면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티스타 상사가 무대에 올라섰다. “이제부터 내 명령 말고는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말라. 주임상사들은 즉시 각자의 부대를 장악하라. 상사가 없거나 상사가 지휘를 거부하면 그 부대는 원사가 지휘한다. 상사가 없으면 하사가, 하사가 없으면 병장, 상병이, 그마저도 없으면 신병이라도 부대를 지휘해야 한다. 군은 지휘체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꼭 장교만이 지휘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대 안에는 부사관들의 앞을 가로막을 장교들이 없었으므로 총소리 한번 나지 않았다. 부대를 장악한 그들은 섬 전역의 부대에 전화 통신으로 상사들이 군을 장악했음을 통보했다. 바티스타 쿠데타 성공의 비결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부정부패한 장교들은 부대원의 숫자를 거짓으로 꾸며 정부 돈을 훔쳤다. 그리고 부사관과 일반병을 가정부나 하인을 대하듯 했다. 언변이 뛰어난 바티스타가 그 점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쿠데타는 성공했다. 며칠 전 섬을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세스페데스 대통령이 아바나를 비운 사이 반군은 정부 관리들을 아바나 밖으로 내쫓았다. 바티스타 상사는 쿠데타 관련 특종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전화를 직접 받아 취재에 응했다.


퇴근 후 공원을 산책하던 중 쿠데타 사실을 보고받은 고위 지휘관이 주모자를 물으니 보고한 병사가 바티스타라고 대답했다. 장교가 바티스타가 누군지 되물은 지휘관 회의를 기록하는 속기사라고 했다. 속기사는 32세의 풀헨시오 바티스타였다. 속기사인 그는 회의를 기록하기 위해 고위 장교 회의에 자주 참석했고, 군의 속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인터뷰한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가 젊고 잘생긴 데다가 말도 꽤 잘했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바티스타는 여덟 명의 쿠데타 가담자 가운데 한 명일 뿐 수장도 아니었지만, 상황을 잘 파악했고 목소리가 크고 말을 잘해 동조 세력을 잘 규합했고 대담한 성향에 머리 회전도 빠르며 말을 잘하는 바티스타가 라디오에 나가 그들이 국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하는 등 바티스타는 쿠데타 세력의 입이 되었다. 그런 능력은 사람들에게 바티스타가 새로운 권력의 수장이라고 인식하게 했다. 지휘관들에게는 이미 그들의 자리를 상사들이 차지했으니 부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통보했고 장교들은 통보받은 대로 따랐다. 허리케인으로 입은 피해를 조사하고 대통령궁으로 복귀한 세스페데스의 집무실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들어와 이미 정부를 인수했다고 통보했다. 세스페데스는 곧바로 대통령 궁을 비웠다. 그때부터 25년 동안 바티스타가 쿠바를 장악했다.

군을 장악한 상사 바티스타가 라몬 그라우를 대통령으로 지명했다.


‘상사들의 반란’ 소식을 전해 들은 아바나 대학생들이 바티스타가 있는 막사로 몰려와 연합을 제안했다. 단 쿠데타군이 군사 통치 기간을 짧게 마무리하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조건이었다. 마차도 독재정권을 타도하는데 주력했던 학생들은 군대가 나서서 개혁 세력과 손잡고 과도적인 정권을 닫고 혁명을 해 준다면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고 많은 것을 개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티스타는 스스로 대령으로 진급하고 군부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혁명 정권은 과도적으로 5인 위원회를 국가 최고 통치기구로 설치해 마차도 정권에 협력한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경제 구조를 조정하며 정치를 개편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쿠바를 건설한다는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권력을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5인 위원회는 딱 5일만 운영되었고 그나마 세 명은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바티스타에게 학생과 손잡을 것을 충고한 좌파 언론인 한 명과 46세의 아바나대학 교수 그라우 두 사람만 회의에 참석했다. 학생운동 지도자가 5인 위원회의 한 명인 라몬 그라우를 대통령으로 지명했다. 신문들은 정부 권력이 ‘정통 혁명Partido Auténtico’ 세력에게 넘어갔다고 머리기사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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