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314 팍스 바티스티아

by 조이진

팍스 바티스티아나

대통령 직위가 없어도 바티스타는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상사들의 반란 때부터 바티스타가 대통령에 취임한 1940년까지 7년 동안 모든 쿠바 대통령은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바티스타에게 결재받는 허수아비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쿠바 국민은 알고 있었다. 군부는 먼저 그라우 정권에서 혁명적인 정책을 주도했던 급진적 인물과 바티스타의 정적이 될 만한 인사들을 암살하고 제거해 갔다. 학생과 노동자 수백 명을 투옥했고 재판은 형식적이었다. 쿠바 군대는 미국이 만든 군대였다. 미국과 싸울 일도 없거니와 미국의 식민지를 침략할 외국 군대도 없을 것이니 쿠바 군대는 사실상 내부 정적에게 총구를 겨누는 무장한 정당과 다름없었다. 계엄령을 선포했으므로 노조는 해체되고 국민의 권리는 제약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플로리다로 옮겨 정치 조직을 재건하거나 성공한 혁명의 공기를 마셔보고자 멕시코로 향하기도 했다. 또 일부는 공화파 군에 자원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상사였던 바티스타는 이제 장군으로 승진해 쿠바 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고, 법원을 장악했다. 속기사 특성상 상황 판단 능력이 빠른 바티스타는 그라우 정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금세 파악했다. 정적들의 힘의 원천은 독립 전쟁 때부터 쿠바 국민이 열망해 온 변화를 수용하는 개혁에 있었다. 1920년대부터 쿠바 국민은 임금 개선, 토지 소유, 공교육, 새로운 헌법, 그리고 미국에 독립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을 정치에 요구했다. 부패한 마차도는 뇌물을 챙길 수 있는 대형 공공사업은 적극적으로 발주했지만, 국민교육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고 학교는 폐쇄되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국민의 문맹률은 60%를 넘었다. 바티스타는 지난 20여 년간 국민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들의 일부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야 정적을 능가할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그라우 정권이 펼쳤던 정책 일부를 이어갔다. 정책으로만 보면 바티스타는 그라우 정권의 젊은 내각들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비슷한 정치인처럼 보였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기득권도 없는 가난한 민중을 위해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인으로 바티스타는 새로 나고 있었다.

20240222_112209.png 1930년대 아바나 타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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