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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Feb 25. 2024

15. 그란마

#328 마에스트라

  산에 든 지 1달 만인 다음 해 1월 게릴라들이 첫 승리를 거둬 총과 탄약, 식품 같은 보급품을 확보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 두 번째 전투에서도 승리했다. 상륙은 엉터리였지만 모반자들은 지금 승리하는 방법을 깨쳐가고 있었다. 혁명전쟁은 시작되었다. 감옥에서 늘 혁명을 구상해 온 피델에 혁명은 두 가지 축이었다. 하나는 군사 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로파간다였다. 그는 정치선전전이야말로 모든 혁명이 대중을 만날 때 보여주는 얼굴이라고 여겼다.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 대중들의 감정에 스며들고 공감 영역을 넓혀가는 정치 선전 활동은 전투가 끝난 뒤에 계속 이어지는 전투의 일부였다. 피델은 쿠바 민중들에게 그가 아직 살아있고, 산에서 바티스타와 싸우고 있고, 승리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했다. 피델은 7.26 운동 요원 한 명은 10명에게 전화를 하고 그 10명은 또 10명씩 전화를 하게 해 피델이 여기저기서 정부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고 또 이기고 있다는 산 위의 소식을 산 아래에 전했다. 피델은 더 빨리 전황이 확산하기를 원했다. 그는 지금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려 했다. 쿠바인들은 미국의 매스미디어를 즐겨 사용해 왔다. 두 번째 승리한 지 1주일 뒤 요원 한 명이 산에서 내려갔고 아바나로 잠입해 미국인 기자와 접촉했다. 산으로 데려가 피델을 직접 취재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죽었다는 피델이 살아있다니! 그리고 정부군을 상대로 연승하고 있다니! 엄청난 특종감이었다. 1930년대부터 20년 이상 쿠바에 상주해 취재해 온 뉴욕 타임스 통신원이 시에라 마에스트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 피델은 새 포장을 막 뜯고 꺼낸 신선한 시가를 권했다. 기자의 취재 노트는 “자금과 대원, 보급품 같은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춘”, “강렬한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 찬”, “타고난 지도자” 같은 문장으로 채워졌고, 기사에는 그의 여러 소대가 여러 곳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고 전투에서 거듭 승리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때 실제 피델의 요원은 40명이 채 안 되는 1개 소대 수준의 병력이었지만 기자는 그런 규모의 소대가 여럿 있다고 믿었다. 기자는 피델에 인터뷰 기사의 신뢰를 위해 필요하니 날짜와 함께 서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피델은 기꺼이 그렇게 해주었다. 기자는 자신이 인터뷰하고 있는 이 남자가 피델인 것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여러 해 전 피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편지에 서명된 피델의 서명과 지금 피델의 서명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아내의 팬티 속에 피델의 서명을 숨겨 산에서 내려왔다. 바티스타 군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신문팔이 소년들은 ‘피델이 살아있다’라는 헤드라인을 외치며 뉴욕 거리를 뛰어다녔다.      

  바티스타 정부는 마지막 남은 반란군 1명까지 모두 사살했다는 뉴스로 대응했다. 피델을 사살했다는 뉴스처럼 이번에도 가짜 뉴스였다. 그러나 다림질까지 한 올리브색 전투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시가를 물고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최신형 망원경까지 달린 반짝거리는 새 총을 든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웃고 있는 잘생긴 용모의 피델의 사진이 실린 뉴욕 타임스 1면 특종 기사를 가짜 뉴스가 넘어설 수는 없었다. 카스트로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가 지금 바티스타와 싸우고 있었다. 자국민에게 총탄을 쏘는 바티스타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미국을 비판한 피델은 제국주의 미국과 싸우고 있는 투사였다. 그는 바티스타의 군대에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쿠바 군인은 그의 적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쿠바 국민은 바티스타가 아닌 피델 카스트로의 심장과 영혼과 일치해 가고 있다고 기사는 끝을 맺었다. 기자는 피델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린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 정의, 헌법 질서와 선거의 부활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닌” 지도자라는 점을 알렸다. 정책 측면에서 모호한 면이 없지는 않아도 피델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민주주의자임은 분명해 보인다고도 했다. 바티스타 진영도 선전전에 나섰다. 

타임지는 뉴욕 타임스 기자가 공산주의자인 피델을 직접 인터뷰하지 않고 상상으로 쓴 공상 소설일 뿐이라고 혹평하는 바티스타 진영의 주장을 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타임지는 원시림에서 피델이 시가에 불을 붙이고 있는 사진과 피델과 뉴욕 타임스 기자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두 장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을 하지 못했다. 반바티스타 활동가들이 이 기사를 복사해 마이애미와 쿠바에 보냈다. 피델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홍보전에서도 크게 승리했다. 그가 살아있음이 사실로 증명되었으므로 많은 기자가 특종을 위해 시에라 마에스트라산맥에 들어갔다. 바티스타는 그 산맥에는 게릴라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피델을 만난 한 기자가 ‘당신은 공산주의자인가?’라고 물었고 피델은 ‘그 질문은 내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다’라고 대답했다. CBS 방송은 생방송 제작팀을 보내 게릴라들을 취재한 내용을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해먹에 누워 쉬고 있는 병사, 나무 그늘에서 물을 마시는 병사, 산길을 걷는 병사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미국인들은 생방송 영상에서 세 명의 젊은 미국인들의 모습과 목소리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관타나모 미군 해군기지에서 태어나 자란 그 미국 시민은 인터뷰에서 오직 세계의 자유를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하기 위해 여기 합류했다고 답했다. 피델은 이 산은 시작일 뿐 우리는 아바나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를 것이라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모든 대원이 쿠바 국가를 함께 불렀다. 미국인들은 영상으로 그것도 생방송으로 뉴욕 타임스 1면에서 보았던 피델의 얼굴을 직접 확인했다. 그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피델은 뉴욕 타임스 기자와 인터뷰했을 때는 보여줄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CBS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자원병들이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돈과 탄약을 실은 차량도 올라오는 이 장면도 방송을 통해 세계에 송출되었다. CBS 생방송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을 때 아직 혁명이 승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산에 들어간 6개월 전에 비하면 피델이라는 별은 아메리카의 하늘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타임스지는 31차례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에서 취재한 카스트로의 혁명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타임스는 피델을 ‘절대로 죽지 않을 반바티스타 반란 세력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여름 방학을 맞은 미국 대학생들이 피델의 게릴라 캠프에 합류하고자 배낭을 싸매고 쿠바로 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동생마저도 피델을 ‘품격 있는 혁명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를 수식하는 수식어만도 수십 개였다. 피델은 저항할 수 없는 흡입력을 지닌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미국의 매스미디어를 역이용한 홍보전. 방송 카메라가 혁명의 앞날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그가 멕시코에서 체 게바라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미국의 카메라를 이용해 약속한 것처럼, 이 혁명에 성공할 것이라는 피델의 확신은 더욱 분명해졌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속에서 체와 피델은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교육과 의료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빈곤에 절망하고 있는 민중들을 대면했다. 혁명가들은 산중 게릴라 경험을 통해 민중들의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새기며 쿠바 혁명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해 갔다. 무엇보다 농촌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자원을 재분배할 것이며 도시 거주인들을 농촌에 내려보냄으로써 처절한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 건설과 의식화를 추진하겠다는 혁명 프로그램들을 산중에서 개발했다. 피델과 체 게바라에게 혁명의 목표는 물질을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소외에서 벗어나게 하고 정신적 도덕적으로 혁명의 주체가 된 ‘새로운 사람nuevo hombre’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 쿠바 혁명에는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전략이 중요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련이나 중국의 혁명과 다른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이런 그들의 생각이 미국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세계에 전파되었고,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쿠바 혁명은 큰 울림을 일으켰다. 차가운 전쟁의 열기가 뜨거웠던 그 시대에 쿠바 혁명은 낭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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