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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Feb 25. 2024

15. 그란마

#329 플랜 C

CIA

  맘보와 탱고는 유쾌했지만, 그때 쿠바의 정치와 일상은 불타는 지옥이었다. CIA는 멕시코에 망명한 피델이 쿠바 혁명을 위해 라틴아메리카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젊은 공산주의 지식인들을 모아 게릴라군을 조직하고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소아 때부터 천식으로 고통받아 온 체 게바라도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들어왔다. 미국의 턱밑 쿠바를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다는 것은 미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였다. 미국은 국민이 완전히 등을 돌린 바티스타에게 하야를 권했지만 바티스타는 버텼다. 버티는 바티스타와 부상하는 카스트로 사이에서 시간은 미국의 편이 아니었다. 자칫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 ‘또 하나의 아메리카’를 통합해 ‘제국’이 되려는 미국의 구상은 큰 차질을 입을 것이다. 쿠바섬은 미국이 라틴아메리카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꼭 필요한 징검다리이자 교두보였다. 만일 쿠바를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면 쿠바는 반대로 미국의 남하를 막는 라틴아메리카의 방파제가 될 것이다.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육군, 해군, 해병대 등에 산재해 있는 정보기구들을 한 곳에 모아 테러와 소요 사태 선동, 군사 침투 등 특수전과 공작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인 CIA를 만들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준동하는 반미 공산주의를 ‘공작’으로 분쇄하는 기구인 CIA는 게릴라들이 승리하기 전에 다급해진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술칼이었다. CIA의 시간이었다.      


  아이젠하워는 피델이 쿠바를 장악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쿠바의 자유화는 과거와 조화하거나 연속되지 않고 ‘폭발’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었다. 폭발이 만든 공간으로 공산주의가 확장될 것이고, 공산주의를 고리로 소련의 영향력이 쿠바섬에 파고들 것이었다. 지정학적으로 쿠바는 미 해군이 카리브해를 지배할 때 관문이자 요새나 마찬가지다. 그런 쿠바섬을 미국 외에는 어느 나라도 영향을 끼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되었다. 미국 본토와 단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쿠바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즉시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고, 특히 그것이 공산주의 세력이라면 미국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었다. 냉전 시대 쿠바는 오직 미국의 힘으로 차단되고 보호되는 안전지역으로 관리되어야 했고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미국의 ‘전략 자산’이었다. 폭발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므로 섬의 동부와 서부를 분단시켜 관리할 수도 없었다. 당시 미 국무장관은 아이젠하워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즉시 실행 계획안’을 올렸다. “국무부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림. 바티스타를 국가수반과 군 통수권자 위상에서 제거하고, 꼭두각시 후계자에게 이양하게 할 수 있도록 미 국무부는 모든 조치를 다 한다. …. 미 국무부는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되 우리의 비개입 정책이 공개적으로 훼손되지는 않게 할 것이다. 그래서 바티스타와 카스트로의 사이 즉 부패와 개혁의 중간 지대에 제3의 세력을 심겠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아이젠아워와 닉슨

  그란마가 쿠바에 상륙한 뒤로 게릴라 부대에 합류하는 민중들이 줄을 지어 산으로 올라갔고, 대규모 시위에 합류했다. 반미 반독재 투쟁에 계층과 피부색이 나뉘지 않았다, 미국에 위기인 상황은 확실했다. 바티스타 정권을 지탱한 군부는 압도적인 숫자와 미국이 제공한 고급 군사 장비에도 게릴라들을 막지 못했다. 부패한 독재자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 군인은 없었다. 피델은 쿠바의 모든 반정부 세력을 조직하고 작전을 명령할 만큼 세력을 키울수록 바티스타 정권은 정치적 위기로 치닫고 있었고 군부 장악력도 이완되었다. 바티스타가 위축될수록 미국은 다급했다. 쿠바 주재 미국 대사는 워싱턴에 ‘미국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사용해야 할 시점’이라며 시급하게 ‘행동’할 것을 다그쳤다. 미국은 바티스타를 퇴진시키고 선거를 실시해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으로 교체할지 방안도 검토했지만 쿠바의 정치 세력이 난무하고 쿠바 민중들의 반미 의식이 강해 과연 미국이 구상한 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또 군부 내 온건 중도 세력을 배후 조정해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고 임시 과도 정권을 세운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미국이 쿠바 쿠데타에 직접 개입했을 때 쿠바 내 반발과 미국 여론의 반대, 무엇보다 소련과 중국의 개입을 초래할 빌미가 될 위험이 있었다.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이 서는 것만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 CIA의 목표였지만, 쿠바가 반자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을 제거할 마땅한 수단도, 시간도 부족했다.       

쿠바 국민들에게 지지받는 혁명 세력

  CIA가 바티스타 정권의 쿠바에서 광범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치단체, 사회단체, 공무원, 군과 경찰에 CIA 요원들이 침투해 있었고 휴민트들이 지시받고 있었다. 바티스타 정부를 CIA가 운영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바티스타는 미국의 사퇴 압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티스타 정부군은 게릴라들에게 연전연패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마땅한 수단도 남지 않았다. 이제 CIA는 게릴라들이 승리하더라도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피델이 아바나에 들어올 때 저항이 없이 들어오도록 협조해 주고, 그 대가로 피델과 연합정부를 세운 뒤 CIA가 추천한 연합정부의 파트너에 힘을 실어주고 파트너를 조정해 피델이 주도하는 정부를 견제함으로써 혁명의 개혁을 지연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겉모습은 혁명에 성공한 민족주의 정권으로 포장하고, 그 속은 여전히 미국에 복속된 위성국가로 남게 한다는 속셈이었다. CIA의 플랜 B인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 전략을 미국 국무부가 승인했다.  임시 과도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카스트로와 7.26 운동 세력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어도 고립시킬 수는 있었다. 미국은 그럴 힘이 있었다. 만일 그마저도 실패한다면? 플랜 C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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