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가이나
가이나들
기욤 9세가 아직 어렸을 때 옥시타니아의 군주 기욤 8세는 모슬렘이 차지하고 있던 사라고사를 공략해 아라곤과 바르셀로나 지역의 군주가 되었다. 전투에 승리한 아버지가 옥시탄으로 돌아올 때 많은 여자 노예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왔다. 이슬람 궁정에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성 노예가 되는 아름다운 가이나들이 보통 수천 명씩 있었는데 모슬렘 토후들은 가이나들의 숫자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던 풍조가 있었다. 가이나들의 노래와 춤 실력은 성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해주는 척도였다. 그런 모슬렘 토후들을 꽤 부러워했던 기욤 8세가 데려온 수백 명의 가이나들이 밤마다 북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추었고, 성 안에는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분내음이 가득했다. 어린 기욤 9세는 그 성에서 성장했다. 출생의 신분이 분명하지 못해 성인이 될 때까지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자랐으니 분내 진한 밤 문화와도 가까웠다. 이미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해왔던 종글러들도 피레네를 넘어온 가이나들의 밤 문화에 영향을 받아 음탕하면서도 서정적인 사랑 노래를 부르는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기욤 9세같은 기사들이 춤을 추며 그런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프랑스 트로바도르 음악의 시작이었다. 이런 자극적인 스타일의 트로바는 옥시타니아의 궁정 기사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고, 트로바를 부르는 기사 가수들인 트로바도르들을 통해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트로바도르들은 트로바를 노래하기 위해 노랫말poets을 지었다. 이탈리아와 북프랑스, 독일로 간 트로바도르의 시문학은 이제 기사들 대신 전업 문인들이 본격적으로 문학을 하는 시대를 열게 했다. 기욤 9세의 손녀딸 엘레오노르도 할아버지처럼 성 안에서 궁정 연애 문학과 예술을 배우며 자랐다. 나중에 영국 왕비가 된 엘레오노르는 옥시타니아에서 트로바도르들과 뮤지션, 가이나들을 영국으로 데려가 영국의 문학과 음악을 후원해 탄생하게 했고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영국적인 사랑 이야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문학의 산실인 피렌체에서는 시인 카발칸티가 배출되었다. 그의 시는 ‘달고 새로운 스타일dolce stil nuovo’라 불릴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표현의 시어들로 가득한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카발칸티가 이탈리아 문학을 처음 개척했다. 이때가 13세기다. 카발칸티의 영향을 받아 단테가 나타났고, 단테에게 영향을 받은 페트라르카는 소네트sonnet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탄생시켰다. 이 소네트가 근대 유럽 시문학의 원형이 되었다. 이들 다음 세대에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 트로바도르는 유럽 문학의 아버지이고, 후글라르는 조부쯤 되는 셈이다. 아랍의 시인들과 가이나들은 외갓집이라 할 수 있겠다. 양 문화의 접촉이 잦은 이베리아에서 가장 먼저 유럽 문학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유럽 문학의 자궁은 이베리아라 할 것이다. 트로바도르 문학은 14세기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나서 그와 함께 사라졌다. 문학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난 20세기 쿠바에서 새롭게 부활했다. 쿠바에서 태어난 트로바도르도 두 다른 문화가 만나 태어났다. 친부는 유럽이지만 외가는 아랍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