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티아고

2. 산티아고

#033 도미니크

by 조이진

십자군

피레네 북녘 남프랑스 옥시타니아 지방에 음유시인 기욤 9세가 주도한 트로바도르의 아름답고 고결한 로망스 핀 아모르fin amor 이야기만 피어났던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새로운 혁신 운동의 영향으로 남프랑스 툴루즈 일대에서 새로운 기독교 교파가 형성되었다. 세속 권력과 황금을 중시하는 로마의 가톨릭에 반대하고, 그런 기독교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으로 툴루즈를 중심으로 카타리 또는 순수파가 교세를 성장했다. 가톨릭 대 카타리, 로마 대 툴루즈라는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순수파는 기독교가 순수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마 교황과 기독교가 돈과 권력을 포기하고 순수해져서 오직 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화롭게 살면서 권세를 행세하는 로마 교황청과 수도사들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이들 논쟁을 상징하는 것이 성례, 새크라멘토 Sacramento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깨우침에는 힘쓰지 않고, 외적인 의식과 화려함을 중시하는 새크라멘토에 치중한다고 비판했다. 새크라멘토는 상징 조작일 뿐 종교의 요체가 아닌데 이런 허례허식을 통해 어리석은 대중을 지배하려 한다며 로마가톨릭을 비판했다. 무엇보다 세속에 대한 강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로마 교회를 부정했다. 남프랑스를 장악한 순수파들이 독일을 거점으로 카타리파의 교황을 새로 선출하고 프로방스를 비롯한 몇 지역에 주교를 임명했다. 하나의 종교에 교황이 둘이 마주 섰다. 가톨릭으로서는 황금으로 치장된 교권이 걸렸다. 이를 놓고 주도권을 놓칠 수는 없었다. 로마 교황은 남프랑스의 영주들에게 특사를 보내 카타리파 신도들을 가톨릭으로 전향시키라고 요구했다. 이 지역은 교황이 세금 징수권을 빼앗아간 지역인데 영주들이 그런 교황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당연했다. 영주들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세속 권력 교황청에 대들지는 못했어도 로마가톨릭에 반대하는 카타리파가 교세를 키울 수 있게 은밀히 도왔다. 반면 북프랑스 왕은 지역 영주들을 제압한 뒤 남프랑스 옥시타니아까지도 장악하고 싶었다. 남프랑스를 제외한 프랑스를 통치하는 왕과 로마 교황은 뜻이 맞았다. 프랑스 왕이 십자군을 조직했다. 십자군의 적은 모슬렘이 아니라 남프랑스의 카타리파였다. 이단 처단은 앞세운 명분이었고 사실은 비옥하고 온화하고 풍요한 프로방스 땅을 탐해 시작한 전쟁이었다. 사자왕 루이 8세가 십자군을 이끌었다.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유명한 난공불락의 성 카르카손이 함락되었다. 세속의 무력과 연합한 로마 교황청이 종교 전쟁에서 승리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로마 교황청은 반란을 일으킨 카타리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처형했다. 카타리 신자들을 모조리 토벌하여 장작더미 위에다 산 채로 묶어 불에 태워 죽였다. 깊은 산속으로 도망한 자들도 샅샅이 뒤져 살해했다. 관용하고, 용서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미 죽어서 부활하지 않았다. 십자군 병사가 카타리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특사로 파견된 교황 대리에게 물었다. “전부 죽여라. 하느님이 알아서 골라내신다.” 북프랑스가 프로방스와 옥시타니아를 병합했다. 이 전쟁으로 오늘날의 프랑스 영토가 결정되었다. 본디 바스크와 옥시타니아는 동질 한 문화와 경제로 연대해 온 하나의 공동체였다. 이 전쟁으로 이베리아와 옥시타니아는 갈라지게 되었다.

청빈과 금욕으로 수행한 카타리 신도들이 카르카손 성에서 끌려 나와 산 채로 불태워졌다.

사냥개

스페인 왕 페르난도 3세는 교황에게 철저하게 복종했다. 기독교 수호자를 자처한 그가 산티아고기사단을 지휘했다. 기사단은 칼자루 모양으로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사제복을 입었다. 증오와 피의 광기가 칼이 되어 번득였다. 사제복을 입은 수도사들이 산티아고의 이름으로 카타리파 신도들을 화형 했다. 그 공로로 로마 교황은 페르난도 3세를 성인품에 올렸고, 지금도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군주로 여긴다.


카스티야에 도밍고Domingo de Guzmán라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는 몰락한 하급 귀족 출신이었으나 그의 가문은 중앙 정치권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교회를 출세의 루트로 선택했다. 중앙 정치권의 뜻을 알아챈 그가 도미니크 수도회를 열었다. 산티아고기사단을 개조해 왕을 대신해 더 극렬한 기사단으로 만들었다. 중앙 정치는 그에게 완장을 채워 주었다.

클라우디오 코엘로가 그린 <성 도미니크Santo Domingo de Guzmán>(1670)의 초상화

완장 찬 도미니크와 그 형제들이 나타나자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자경활동이 등장했다. 1229년에 카스티야에서 심문Inquisition이 시작되었다. 도미니크가 최초의 심문관이었다. 스페인 재판이라고도 하는 종교재판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에서도 로마의 예수가 카타리의 예수를 심문하고 재판했다. 십자가에 달린 또 다른 예수는 다시 못 박혔다. 카타리파를 척결한다면서 유대교도 대상에 포함했다. 유대인들 혐오는 대중들의 피를 충동질할 때 자극성이 좋았다. 재판은 400년이 지난 17세기말에야 끝났다. 기록상 마지막 종교재판은 멕시코에서 있었다. 심문과 재판은 고문과 선동으로 채워졌다. 심문을 받는 자는 고통과 두려움이,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들은 야유와 환호를 쏟았다. 광장에는 광기와 피 맛을 원하는 흡혈귀들이 넘쳤다. 고야의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린아이를 먹어 치우는 광인을 그렸다.

고야의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빼앗길 봐 아들들을 잡아먹었다. 탐욕과 광기와 폭력성. 자식마저도 뜯어먹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 로마 교황과 가톨릭 사제들이 사투르누스였다. 교황은 도미니크 사제들의 일하는 방식이 보기에 흡족했다. 황금을 두른 마리아의 자비로 도미니크 사제들에게 제한 없는 권능을 허락했다. 산채로 기둥에 묶여 불에 타 죽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비가 내렸다. 자비는 더 센 불로 태워 빨리 죽여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마저 자비와 은혜를 내리 못할 자들은 약한 불로 태웠다. 서서히 오래 소리 지르며 죽어야 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을 태웠고, 자식 앞에서 부모의 성기를 잘랐다. 사제들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일 때 북과 나팔이 흥을 돋웠다. “전부 죽여라. 하느님이 골라내신다.” 교황이 가르쳐준 도미니크 형제들의 구호. 누가복음 3장 17절: 그가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사랑과 관용은 죽은 시어였다.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만이 사제들의 창이 되어 성난 투우처럼 날뛰게 했다. 불에 태울 때마다 사제들은 수호성인 “산티아고!”를 외쳤다. 도미니크 사제들에게는 심문이 십자군 성전이었다. 심문은 곧 로마의 예수와 카타리의 예수가 스페인에서 벌이는 내전이었다. 이번 십자군 전쟁은 카타리와 유대교로부터 로마 교회와 교황을 지키는 성전이었다. 교황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군사Militia of Christ’라 칭했다. 실제로 그들은 군대처럼 조직되었고, 군인들처럼 잔인했다. 사제가 아니라 사냥개였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냥개가 성인이 되었다. 그가 성 도미니크다. 1963년 벨기에 수녀가 부른 노래 <도미니크Dominique>가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이 곡은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창시자 도미니크를 우러른 노래다. 수녀는 이단을 처단하는데 앞장서신 임의 뒤를 따르겠노라고 노래로 다짐했다. 맑고 밝은 천사의 노래처럼 들리지만, 노래는 도미니크와 수도회의 잔인했던 종교재판의 기독교 역사를 미화하고 찬양한 노래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 Santo Domingo. 이 도시와 나라는 신의 사냥개의 이름을 땄다. 콜럼버스가 카리브에 도착해 이곳에 첫 식민도시를 조성했다. 이 땅에서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사의 뜻을 펼쳐 보이겠다며 그런 이름을 붙였다. 도미니크가 했듯 이교도를 심문하고 재판하여 오직 기독교도만이 사는 청정한 새 예루살렘을 만들겠다는 콜럼버스의 사명이 역사의 지문으로 남았다. 신의 사냥개 도미니크가 카리브에서도 사투르누스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었다.



+ 카타리파는 이스라엘이 있는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한 영지주의를 따랐다. 높은 바위 절벽 속에 굴을 파고 수행한 순수파들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중시하는 종교철학이 지배하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싯다르타는 왕권도 버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 정진했고 스스로 깨친 자 부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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