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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엘 미나

3. 엘 미나

#038. 출생의 비밀

by 조이진

엘 임포텐테

포르투갈이 적도를 넘나들 때, 카스티야에서는 세계사의 비극을 선언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국왕 엔리케 4세의 이복동생 이사벨라가 아라곤의 왕위 계승자 페르디난드와 만난 지 5일 만에 결혼했는데 결혼 5년 만에 엔리케 4세가 사망했다. 죽은 엔리케 4세의 왕비는 나바라의 공주였다. 나바라는 이슬람이 차지한 안달루시아를 제외하고는 이베리아에서 매우 영향력이 큰 명문 기독교 왕국이다. 세르반테스도 유독 바스크 사람들을 충성심이 강하고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했을 만큼 나바라는 봉건시대 기사와 기독교 귀족들의 본향이었다. 카스티야는 자신들을 비지 고트족이라 정체성을 정했지만, 바스크 가문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었으므로 종가 격인 나바라 왕국과 정략결혼을 했었다. 엔리케 4세는 성장기부터 내내 동성연애를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발기불능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엘 임포텐테El Impotente, 불능 왕이라고 불렀다.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독일에서 의사를 초빙했다. 의사는 그의 성기가 '작고 꼬부라져서 세우 지를 못한다'라고 진단했다. 의사가 인공 정액 삽입술을 시술하기 위해 엔리케의 정액을 받아 긁어모아 금으로 된 관을 왕비의 질에 끼우고 왕의 정액을 주입했다. 세비야 주교가 증인으로 감시했다. 인공수정은 성공하지 못했다. 스페인 왕실은 엔리케 4세의 정액이 ‘맹물 같고 씨알이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그런 그가 새 동성 애인이 생겨 결혼을 무효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왕의 혼인은 교황의 재가를 얻어야 했으니 이혼도 교황이 허락해야 했다. 정략결혼의 결정권을 교황이 쥐고 있었으므로 교황의 중매사업은 세속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이혼을 청하면서 제출한 사유서의 논리가 희한했다. 세비야 성당 신부들이 왕비를 조사해 보니 여전히 처녀였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세비야 신부들은 세비야의 가이나들에 물었다. 물론 묻기 전에 따로 후하게 작업을 해두었다. 가이나들은 눈을 히번덕대며 국왕이 그녀들과 교접할 때는 매우 지나칠 정도로 왕성했다고 증언했다. 신부들이 엘 임포텐테를 엘 포텐테El Potente, 변강쇠 왕으로 바꿔주었다. 가이나들의 증언이 주교에게 첨부되었다. 주교가 이혼을 승인했다. 왕비가 저주받았기에 성적 결합을 못 한다는 것이 주교가 밝힌 이혼 사유였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의 초상화


출생의 비밀

엔리케 4세는 포르투갈 국왕의 여동생 후아나와 재혼했고 딸을 낳았는데, 이 딸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문제가 되었다. 딸의 어미 후아나는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바람둥이였고, 후아나가 낳은 이 딸도 당연 엔히크 4세의 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던 차에도 이 바람둥이 후아나는 다른 남자의 딸을 둘씩이나 더 낳는 대담한 성 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던 차에 엔히크 4세가 갑자기 사망했다. 죽어가는 엔리케 4세가 포르투갈 남자가 생부라고 알려진 여자아이를 카스티야의 후계자로 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스페인 왕위를 포르투갈에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스페인 왕으로서 엔히크 4세는 이복동생 이사벨라를 후계자로 지명한다고 유언하고 숨을 거뒀다. 이제 출생의 비밀이 이베리아 정치 판도를 결정할 상황이 되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부부 연합이 한 팀이 되어 바람둥이 여인이 낳은 딸을 후원하는 포르투갈과 무력 대결했다. 스페인 왕위 계승권 전쟁에서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세력이 승리했다.

1400년 무렵 카스티야-아라곤 부부연합 영토

이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끝없이 부딪히는 오월동주의 사이가 되었다. 단순히 이베리아의 왕권만 판돈으로 걸린 것이 아니었다. 해외 진출권도 한 묶음이었다. 그것을 교황이 중재하고 결정했다. 세속에 눈 밝은 교황은 자신의 이익을 최적화하고 극대화하는 결정을 했다. 이베리아와 카나리아 제도는 카스티야가 갖고, 그 밖의 지중해 바깥 대서양 여러 섬은 포르투갈이 갖기로 했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에서 권리를 축소하는 대신 아프리카에 대한 독점교역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엘 임포텐테가 낳은 아이의 출생 비밀이 수천만 명 아프리카인의 운명을 결정했다. 교황의 이 중재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해외 팽창 방향도 결정되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계속 남하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아프리카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제3의 땅을 찾아야 했다. 북쪽은 프랑스. 지중해 동쪽은 오스만튀르크. 스페인이 갈 수 있는 방향은 오직 한쪽. 서쪽 바다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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