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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엘 미나

3. 엘 미나

#042. 카나리아

by 조이진

카나리아

스페인은 카나리아 제도를 1402년부터 정복하려 했지만, 100년이 다 된 1496년에야 마무리되었다. 원주민인 관체족이 극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10만 명 가까웠던 관체족은 스페인이 정복한 지 200년이 채 되지 않아 멸종되었다. 착취와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카나리아 제도 침략은 나중에 쿠바와 카리브해에서 일어날 일들을 똑같이 예고했다. 포르투갈이 마데이라에서 했던 것처럼 카나리아 제도는 뒷날 아메리카에 이식될 정치적, 경제적 식민지 통치 제도를 개발하는 스페인의 학습실이었다. 예를 들면 이 섬들의 통치권은 국왕에게 있었지만, 즉 국왕의 영토이지만 국왕은 원정 대장들에게 원정에 따른 수익 지분을 나눠주고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복 권리와 함께 상당한 통치권을 위임하고 신분의 특권을 부여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원정 대장이자 통치권과 정복 권리를 부여받은 자. 총독이다. 이 계약은 이베리아에서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레콘키스타 때 왕과 기사들이 맺었던 계약의 모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상인이자 군인이었던 기독교도가 이교도 모슬렘과 싸운다는 것은 가장 흔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기사는 왕과 계약하여 성과에 따른 수익을 '프로젝트 지분'으로 보상받았다. 요샛말로 조인트 벤처 또는 특수목적법인인 셈이다.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버스도 이 방식으로 신대륙 정복에 대한 투자 계약을 맺었다. 1대 주주로 자본금을 낸 투자자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이었고, 콜럼버스도 성공 보수 성격의 프로젝트 지분과 별도로 개인적으로 자본금을 투자한 지분 10%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이 돈을 유대인에게 빌려서 댔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를 정복한 자들 모두 왕-쿠바 총독, 총독-각 지역 정복 대장, 정복 대장-대원 간 계약을 기반으로 각자 자기 사업을 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스페인 왕의 것이라지만 바다 건너의 왕의 권력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웠으므로 실제로는 땅도, 황금도, 원주민도 모두 자기 소유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에게 식민지 정복은 말 그대로 황금을 노리는 이권 사업일 뿐이었다. 그런 스페인의 식민지 개발 모델이 이때 카나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데이라와 마찬가지로 카나리아도 사탕수수와 아프리카 노예 노동에 기반을 두었다. 카나리아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했다. 생산 요소를 대량 투입해 생산량을 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노예 노동에 바탕을 둔 플랜테이션이다. 콜럼버스가 팔로스항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마지막으로 물과 식량을 실을 때 카나리아 제도에만 벌써 29개의 설탕 플랜테이션이 가동되고 있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설탕은 잉글랜드의 브리스틀이나 플랑드르뿐만 아니라 멀리 흑해 지역까지 수출되었다. 콜럼버스가 출항할 무렵에는 마데이라에서만 매년 1,500톤 가량의 설탕을 생산하고 있었다. 노예 노동과 설탕 생산, 운영 방법 그리고 유럽 시장 수출 같은 사업모델이 검증되고 숙성되었다. 수익성이 좋아질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흑인 노예를 다루는 잔인성도 한결 원숙해졌다. 설탕은 피로 젖었다. 카나리아섬에서 다듬어진 사탕수수플랜테이션 농업과 사탕수수 수확 기술, 설탕 제조 기술이 그대로 쿠바로 이식되었다. 설탕의 섬 쿠바에서 설탕 한 방울은 피 한 방울로 만들어졌다.

카나리아 제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널 때 마지막으로 물과 양식을 실었다.

이 섬의 이름이 카나리아Canaria인 것은 이 섬에 아주 사납고 큰 개들이 득실댔기 때문이다. 큰 개가 많은 섬이라서 카나리아라 불렸다. 도고 카나리오Dogo Canaria라는 대형 개의 원산지가 여기다. 이 개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개로 평가받는다. 송아지만큼 큰 데다 탄탄한 근육질, 강한 저작근과 송곳니를 가진 공격 성향이 심한 야수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개들을 쿠바와 아메리카로 가져갔다. 도고 카나리아가 사람을 사냥하는 개로 마을에 풀어졌다. 신의 뜻이었다. 도망치는 원주민들의 목 뒷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리스도의 개들이 사람의 살과 뼈를 찢었다.

도고 카나리오. 65kg까지 나가는 육중한 대형견으로 카나리아 섬이 원산지다.



+ 콜럼버스의 다음 세대 정복자인 멕시코 아스텍을 정복한 코르테스는 쿠바 총독이었던 벨라스케스에게 정복권을 받아 정복 전에 나섰다. 그때 그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총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총독 벨라스케스는 자기 개인 돈을 투자했으므로 성공에 따른 투자 수익도 개인의 몫이었으므로 아메리카에서 유럽인들의 식민지 정복은 개인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를 허용해 주고 새로 정복한 땅의 통치권을 갖는 국왕에게 계약에 따라 총수익의 일정 지분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투자은행과 투자받은 벤처 기업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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