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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Nov 03. 2023

3. 엘 미나

#045. 존 맨더빌

인디오

  콜럼버스 시대에는 이런 곳을 인도라고 특정했다. 유럽인들에게 인도는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 나오는 정원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카리브에 닿았을 때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인디오,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보쉬의 그림 속 풍경과 캐릭터들처럼 신세계의 인디오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반면 유럽인은 신이 자기와 닮게 피조한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유럽인은 괴물들을 죽이고 보물을 가져와야 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상상했다. 에덴동산의 금발의 백인만이 선하고 아름다웠다. 피부가 검거나 모과 빛의 유색인들은 괴물이거나 괴물과 다를 바 없이 야만이고 괴기스럽고 열등했다. 유색인과 괴물은 신의 징벌을 받아 만들어진 사탄이자 악이었고, 칼로 베야 할 용이나 거대한 뱀이었다. 우월한 유럽인은 아르고호에 탄 신화 속 영웅이었다. 인디오. 이 단어 속에는 그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유럽인이 살상해도 마땅한 적의와 혐오, 우월의식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투사된 기독교 유럽 세계 바깥에 사는 인간들에 대한 이미지였다.     

여행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어드벤처 놀이동산 같은 세계. 모험 소설 <십자군 기사 존 맨더빌 경의 여행>에서 존 맨더빌은 지구는 둥글다고 상상했다. 지구 둘레 길이도 측량했다. 지구 둘레는 정확하게도 32,886.9km였다. 실제 지구 둘레는 40,075km. 맨더빌의 길이도 진실에 꽤 가까웠다. 서기전 3세기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46,250km라고 했었다. 그러니 존 맨더빌이 어떤 근거를 갖고 지구 길이를 그렇게 제시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존 멘더빌 경의 여행>. 1357년에서 1371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위키피디아

  소설에서 아프리카의 크기는 유럽의 절반 정도였고, 지구의 배꼽 옴파로스는 예루살렘이었다. 그 배꼽 한가운데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가 살던 천국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옴파로스는 델포이였다. 제우스가 지구의 중심을 찾기 위해 세상의 양쪽 끝에서 동시에 독수리를 날게 해 서로 교차한 지점이 델포이다. 제우스는 그곳에 돌을 놓아 세상의 중심으로 표식 삼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옴파로스는 지정학적 힘과 세상을 통합하고 조화하는 능력의 자궁이라고 믿었다. 기독교인들에 의해 옴파로스가 델포이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면서 기독교 세계관은 그리스 세계관과도 달라졌다. 이 십자군 작가가 상상한 지구의 모습은 당시 지중해 뱃사람들이 쓰던 중세 지도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고, 이 생각은 성서의 글귀에 바탕을 두었다. 구약성서 에스겔서는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내가 그 성읍을 이방 사람들 한가운데 두고,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다.” 신은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상을 삥 둘러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그때의 기독교도들은 진실로 믿었다. 그때 유럽인은 누구나 그랬다.      

로마 역사가 헤로도토스 시대부터 아시아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 괴수와 동물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 대해 이렇게 인식했다. 

  콜럼버스도 그랬다. 맨더빌의 판타지 모험 소설을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으로 믿었다. 콜럼버스는 특히 장로 요한의 왕국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이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인데, 맨더빌이 직접 다녀온 것처럼 아주 꼼꼼하게 설명을 덧붙었다. 맨더빌이 모험한 기독교 왕국은 지금 악마의 세력에 포위되어 너무 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물도 없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 돌멩이와 모래가 파도처럼 배를 덮쳤다. 심지어는 미리 허락되지 않은 배가 그 왕국에 접근하면 자석의 힘을 가진 돌멩이들이 날아가 배에 꽂혀서 항로를 잃게 했다. 배는 수평선 너머로 추락했다. 맨더빌의 모험담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담보다 더 상상과 허풍으로 가득한 이야기다. 맨더빌의 모험담도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어 읽는 이들을 빠져들게 했다. 고립된 기독교 왕국 vs. 왕국을 위협하는 악마들의 대결, 세상의 모든 영웅이여 이 고립된 기독교 왕국을 구하러 떠나라. 이런 구조로 설정되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가엾은 촛불 같은 기독교 왕국. 장로 요한의 왕국은 너무나 광대한 땅이어서 인도까지 닿았고, 그 넓은 땅덩이 안에 바벨탑이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종교 이야기만 있으면 흥행이 잘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작가 맨더빌은 눈치챈 듯했다. 마침 그 환상의 땅에도 금은보화들이 가득했다. 어찌나 크고 많고 다양한 보석들이 많은지 황금으로 만든 배를 타고 다니고, 옷도 만들어 입고, 접시도 만들고, 물도 황금 잔에 마셨다. 궁전의 문은 상아를 깎아 다듬었고 사파이어와 루비 같은 진귀한 보석을 촘촘히 박아 장식했다. 달빛 받아 우윳빛인 타지마할처럼 이 여행기 속 궁전은 별빛을 받아 보석으로 반짝였다. 판타지 소설 마니아는 매일 밤 요한 왕국을 상상하며 요동쳤다. 그의 가슴에서 인도는 환상과 모험의 성이었다.

      

  포르투갈 왕도 맨더빌의 요한 왕국에 요동쳤다. 이유는 콜럼버스와는 달랐다. 포르투갈은 대륙의 끄트머리 작은 나라다. 이웃한 스페인과 프랑스는 버거운 상대였다. 스페인 왕권을 노리다가 아주 크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나아갈 곳이라고는 바다뿐인 나라. 포르투갈 왕으로서는 국가 생존을 위해 우방이 필요했다. 요한의 기독교 왕국은 환상적인 우방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더군다나 소설에 의하면 그 나라는 군대만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우방으로서 모든 요건을 갖춘 왕국이었다. 포르투갈은 강한 군사력과 넘치는 금은보화를 보유한 기독교 우방이 필요했다. 향신료는 덤일 터였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아프리카 동쪽 연안을 따라 계속 북진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에게 향신료가 더 중요했다면 인도양에 들어섰을 때 바로 인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인도의 향신료 집산지 고아는 인도 서편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도로 가지 않고 향신료가 나지 않는 소말리아 연안을 따라 에티오피아를 찾아 계속 올라갔다. 기독교 왕국 요한의 땅을 찾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설령 요한의 땅을 못 찾더라도 시바의 여왕의 기독교 왕국은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경에 나오는 엄청난 금이 쏟아져 나오는 솔로몬 왕의 금광이 그곳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싶은 대로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돈키호테가 여기저기 흔했다. 이 시바 여왕과 금광 이야기에 콜럼버스도 가슴이 뛰었다. 이 금광을 손에 쥐면 자신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다시 지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구 종말이 오면 새로운 천년왕국의 세상이 열린다. 이 황금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여 영원한 낙원에서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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