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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Nov 03. 2023

3. 엘 미나

#049. 칙서

칙서

  1452년,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출항하기 40년 전 일이다. 로마 교황 니콜라스 5세가 포르투갈 왕에게 칙서를 보냈다. 동로마 제국이 모슬렘 돌궐족 오토만 제국에 무너질 참이었다.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면 거저 집어 먹힐 먹잇감이 될 처지다. 적은 콘스탄티노플에 아주 가까이에 왔다. 동로마 제국이 무너지면 로마는 바람 앞에 촛불 신세가 될 터.  교황청은 위협을 느꼈다. 동로마 제국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구해달라고 간청했고 교황은 새로운 십자군을 일으킬 것을 기획했다. 그때 십자군 백기사로는 포르투갈이 가장 마땅했다. 스페인은 이베리아 안에서 모슬렘과 한창 레콘키스타 전쟁 중이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피해에서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엔히크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한창 남진하고 또 노예무역으로 국부를 쌓아놓았으므로 전쟁을 수행할 여력도 있었다. 

교황 니콜라스 5세. 바티칸과 성베드로 대성당을 개축해 로마를 재탄생시켰다. /위키피디


  교황이 보낸 칙서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을 담고 있었다. 교황은 '사라센인과 이교도, 불신자, 적그리스도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침략하고 수색, 포획하여 영구적인 노예로 만들 권한을 허가하노라'라고 쓴 칙서를 보냈다. 가톨릭 교황이 포르투갈의 노예 사업을 권장하고 이권을 제시하면서 식민지 개척을 촉진했다. 흑인과 이교도의 생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방침을 교황은 신의 뜻으로 공식 선언했다. 검은 황금 채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것이 신을 대신한 교황이 내린 교지의 핵심 내용이었다. 가톨릭의 이 생각은 이후 유럽이 500년 동안 저지른 최악의 범죄의 죄를 사하여 주는 성스러운 세례가 되었다. 신이 저지른 잔혹하고 패륜적인 범죄는 이제 성스러운 사역으로 포장되었다. 다음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아프리카 인간은 영구적으로 노예로 삼아야 하며 노예무역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고 그리스도교의 영역이 아닌 곳은 무한 정복할 것을 승인했다. 교황들의 공격적인 선동으로 기독교 세력은 문명, 비기독교인은 야만이라는 대립적 개념, 선과 악의 구도가 유럽인들의 생각에 선명하게 정립되었다. 문명이 야만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는 일은 그때부터 기독교 신을 위한 유럽인들의 성스러운 사역이었다. 교황의 칙서로 인종 분리와 차별 개념은 기독교인의 당당한 정신세계가 되었다. 교황에게는 서운하게도 그다음 해인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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