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피레네
이베리아는 두 개의 문을 갖고 있다. 북쪽으로는 피레네의 칼을 내리쳐 나눈 듯 가파른 협곡이, 남쪽으로는 지브롤터 앞바다가 이베리아로 들고나는 문이다. 11월의 단풍이 아름다운 피레네산맥은 높아서 눈이 녹지 않는 봉우리들이 많다.
이 산에 걸터앉은 구름은 이베리아의 뜨거움도 프랑스의 차가움도 숨겼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아프리카와 가장 좁은 곳은 13km로 건너편 대륙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피레네는 이베리아를 유럽에서 나누었고, 차라리 아프리카와 가까웠으므로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이베리아를 북아프리카의 일부로 여겼다. 이베리아를 이룬 것은 모두 두 개의 문으로 들어오고 또 나갔다. 이베리아의 두 문 사이를 관통하는 과달키비르강은 이베리아의 등뼈로 솟은 네바다 산맥을 등지고 서남쪽 바다를 향해 길게 흐른다. 이 강을 떠난 배는 곧바로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었고 또 먼바다에서 들어온 배는 이 강을 타고 이베리아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에티오피아 어디쯤에서 출발해서 유럽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남쪽 문을 통해 왔을 것이다. 이 땅에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 땅의 첫 주인이 호모 사피엔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알타미라
이베리아 북쪽 해안에 닿은 산 계곡의 알타미라Altamira. 알타미라는 '높다'는 뜻의 스페인어 alta와 '보다'라라는 뜻의 mirar가 합쳐진 이름으로 높은 곳을 바라보기에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바라다본 높은 곳은 어디였을까. 하늘의 별자리를 보지는 않았을까. 피레네산맥 바스크 지역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산맥 끝 대서양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할 수 있어 야생의 삶을 살기에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16,000년 전부터 14,000년까지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들은 구석기 사람들이 그렸다. 무너져 동굴 입구가 막히지 않았더라면 더 긴 시간을 관통한 그림들이 계속 덧입혀졌을 것이다. 입구에서 270m 들어간 깊고 그윽한 동굴 벽면에는 수십 마리의 들소와 사슴, 말, 돼지 같은 동물의 묘사가 뚜렷하고 아름답다. 이 동물들은 인간이 가축화한 몇 안 되는 동물 종이다. 피카소마저도 ‘누구도 알타미라의 벽화처럼 그릴 수 없다’라고 했을 만큼 아름답고 해부학적으로도 정확한 이 그림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냈을 리는 없다고 여겼다. 이런 그림을 그릴만큼 구석기인들의 두뇌가 좋을 수는 없었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이 그림은 아름다움을 그리지 않았다. 하늘의 별을 보며 생명을 준 신에게 감사하며 굶주림의 두려움과 성공적인 사냥을 염원하는 제단화였고 삶의 봉헌이었다. 이 그림을 그린 구석기 화가들이 지브롤터 바다를 건너 남에서 올라온 검은 피부의 사람들인지, 피레네산맥의 북쪽에서 바닷가를 따라 내려온 흰 피부의 사람들인지, 아니면 해가 뜨는 아주 먼 동쪽에서 온 사람들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때 피레네 북쪽 유럽 땅은 빙하로 덮여있었으니,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중부 유럽 땅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남하할 수 있는 구석기인은 없었다. 그리고 먼 훗날 켈트족과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베리아에 들어왔을 때 이 벽화는 이미 그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이베리아 땅의 첫 주인은 바스크다. 바스크 민족의 뿌리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는 그들을 ‘미스터리’한 민족이라고 했지만, 자연과학이 그 미스터리를 풀고 있다. 생명과학자들이 분석한 바스크 민족의 DNA는 이웃한 스페인, 프랑스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다. 과학자들은 바스크가 구석기시대인 약 35,000년 전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 철기 시대까지 몇 만 년에 걸쳐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서유럽으로 파도처럼 들어오고 또 들어왔다고 밝혔다. 언어학자들도 바스크 민족을 연구했다. 약 6,000년 전 뛰어난 농업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베리아에 이주했을 때 고대 바스크어가 들어왔다고 했다. 이때 쓰인 고대 바스크어가 이베리아에서 사용된 최초의 언어라고 했다. 2015년 스웨덴 분자생물학자들은 현재 살아 있는 바스크는 3,500~5,5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이베리아에 도착한 농경민족의 자손이라고 밝혔다. 농사짓는 집단은 사냥하는 사람들에 비해 문명의 수준이 현저히 높았고, 인구가 많았다. 이들이 따뜻하고 농사짓기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고 그전부터 수렵채집으로 살아온 사냥꾼들은 이들 농경민족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농경민족의 자손 바스크족이 인도유럽어를 쓴 사냥꾼 선주민들을 빙하가 채 녹지 않은 추운 북쪽으로 내쫓고, 알프스 산맥을 따라 난 초원길을 따라 이베리아에 들어왔다. 동에서 서로 이동하면서 바스크족은 남부 유럽에 살고 있던 인도 유럽어를 쓴 사람들을 추운 중부와 북부 유럽으로 밀어내 넓게 퍼지게 했다. 그래서 바스크의 언어는 인도-유럽어에 둘러싸이게 되었고 유럽의 언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의 섬으로 남았다. 서진한 바스크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절벽에서 대서양 바다를 만났으므로 더 나아갈 수는 없었고 피레네산맥 일대는 바스크족의 종착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과 고립된 민족의 섬이 되었다. 피가 섞이기 전까지 그들은 검은 머리칼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