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베리아

1. 이베리아

#003 카디스

by 조이진

3,000년쯤 전.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이베리아의 남쪽 바닷가 툭 튀어나온 야트막한 동굴 바위벽에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배를 그린 다음 막대기처럼 긴 수염을 가진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가나안 땅에서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림 속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배우고, 이제 막 돈의 이치와 돈의 힘을 깨치고 있는 그리스인들도 그려져 있었다. 그때 그리스 사람들은 도시도 문화도 보상도 없는 서쪽 유럽은 한순간도 쳐다보지 않고 돈이 많고 사치스러우며 문화와 사상과 기회와 위험이 있는 동방을 공포와 존경심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배웠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이 동굴을 ‘가디르Gádir’라 했다. 페니키아 말로 '가두는 곳'이라는 뜻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동굴에 값진 보화를 '가두어두고' 지켰다. 지금 스페인 사람들은 이 가디르 동굴을 카디스Cádiz라 부른다. 카디스는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귀한 것을 숨겨두고 지켰다. 티레에서 카디스까지 지중해 바다를 휘어잡은 페니키아인들이 꼭꼭 숨겨두고 지켜야 할 것은 값진 재화 즉 돈이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 땅에 오기 전까지 아주 작았던 이 마을의 사람들은 알을 낳으러 과달키비르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참다랑어를 잡아서 먹고살았다. 카디스는 대서양의 짠물과 이베리아를 관통하는 과달키비르강 민물이 만나는 강의 입구에 있다. 이 작은 마을이 가디르라 불린 뒤부터 이 마을은 서쪽 지중해에서 첫 도시가 되었다. 지중해 동쪽 끝에서 온 페니키아 사람들은 서쪽 끝 카디스를 항구 삼아 지브롤터를 빠져나가 대서양 큰 바다로 배를 몰아 나갔고, 뱃머리를 아래로 꺾어 아프리카 서쪽 붉은 절벽 해안을 따라 교역했다. 뭍보다는 바다에서 더 많은 돈이, 더 큰 힘이 나왔다. 물길도 사람의 길이 되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곧 돈이 다니는 길이 되었다. 큰 바다는 큰 돈의 터였다.

20231120_104419.png 카디스. 안달루시아 지방에 속해있다. 육로는 한쪽만 연결되어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

페니키아가 지중해 안쪽에서 지배력을 높이려 했다면 굳이 지브롤터 해협 바깥 대서양 쪽에 '가두어 두는 곳'을 둘 이유는 없었다. 그럴 것이라면 지금의 카르타헤나가 더 좋은 거점이었다. 지브롤터 바깥에 설치한 카디스는 새로운 생각의 발견자 페니키아의 새로운 포부와 목표를 상징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지브롤터를 벗어나 대서양 바다로 나가 모로코 아래로 아프리카 북서 해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은을 캐고 모아 카디스로 가져와 가두어 두고 지켰다. 좁고 길게 바다 밖으로 혀를 내밀 듯 삐져나온 끄트머리 땅인 카디스는 땅에서 접근해 오는 도적들을 막기 좋았다. 카디스는 BC 1,104년에 그리스 사람들이 쓴 무역 계약서에 지명으로 역사에 처음 기록되었다. 그때 카디스에서 사람이 집을 짓고 밥을 짓고 무리를 지어 살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초기의 카디스는 단지 은을 보관하고 지키는 해군 기지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BC 760년쯤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들이 나타났다. 은을 두었으니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했고, 오가는 사람과 재화의 물량이 많아지니 카디스는 지중해 서쪽에서 가장 번성한 항구가 되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베리아에 알려준 것은 알파벳만이 아니었다. 글을 읽고 쓰는 일도, 상업과 함께 셈을 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페니키아 사람들의 종교도 이베리아에 들어왔다. 바스크가 북문으로 이베리아에 문화를 가지고 왔듯이 페니키아는 남문으로 이베리아에 문화를 가져왔다. 이 시대의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솔로몬이다. 이스라엘도 페니키아 지역에 속한 좁은 땅 중의 일부였으니 솔로몬 왕도 페니키아의 여러 신들을 섬기고 제를 올렸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 같은 신들은 본디 그리스 사람들의 신이 아니라 페니키아 사람들의 신들이었다. 로마가 그리스를 본받았듯이 그리스는 선진국이었던 동방의 페니키아 사람들의 신들을 모방하고 섬겼다. 다만 그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다르게 해 마치 처음부터 자신들의 신인 양 찬양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이베리아에 들여온 문화 가운데는 밤 문화도 포함되었다.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싸운다. 싸움에 능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사람도 빼앗았다. 여자를 빼앗아 벗겨서 곁에 눕혔고, 남자를 노예로 부렸다. 이베리아에 노예제를 들여온 것도 페니키아 상인들이었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여러 곳에서 이베리아로 노예를 데려왔는데 그중에서도 베이루트에 이웃한 유대인은 세력이 약해 늘 만만했다. 유대인들을 노비 삼는 일은 그때부터 흔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이베리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유럽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를 터득하고 노예에 경제를 의존한 스페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마지막까지, 끝끝내 노예제를 포기하지 못한 제국이었다. 스페인이 마지막까지 노예제를 포기하지 못한 식민지가 쿠바였다.


지중해 경제가 발전할수록 카디스는 비좁아졌다. 가까운 곳에 새로운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타르테소스Tartessos. 과달키비르강의 입구에 있다. 이베리아에서 배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이 긴 강은 이베리아 깊숙이 파고들어 코르도바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었고, 이 강을 따라 네바다 산악 지역에서는 좋은 철과 주석이 많이 나왔다. 청동기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이었으므로 강한 칼을 벼리고 은화를 주조하기 위해서 철과 주석은 중요한 광물이었다. 강을 따라 배에 실려 내려온 값진 금속을 사기 위해 페니키아와 그리스 사람들이 과달키비르강을 드나들었고, 이 강에는 큰 금속 시장이 열리는 도시가 있었다. 카디스는 서기전 1,000년 동안 아주 크게 발전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지중해의 주인인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 최북단에도 또 하나의 항구 도시를 세웠다.


+ gadir는 영어 guard의 어원이다.

+ 과달키비르는 아랍 말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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