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플루스 울트라
모가도르
모가도르Mogador. 지금은 에사우이라Essaouira다. 카디스에서 1,000km쯤 아프리카 서쪽 바다를 따라 내려가면 이르는 곳. 지금은 메마른 붉은 모래만 날리는 이곳에 페니키아는 카디스를 또 하나 복제했다. BC 700년 경의 일이다. 모가도르는 북아프리카 말로 '벽'이라는 뜻이다.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내민 해발 3~7m 밖에 되지 않는 낮은 바위는 파도를 막아주는 벽이었다. 바다에 붙어 있는 이 '벽'도 카디스처럼 뭍에서 공격해 오는 도적들에게 금은보화를 가두어 두고 지키기에 좋은 페르시아의 거점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자, 표범, 가젤 등의 가죽과 상아 같은 것들을 말에 실어 모가도르에 가져와 팔았다. 카디스의 상인들은 모가도르에 페르시아산 보석을 가져와 팔았다. 아프리카의 권세 있는 자들이 좋아했다. 카디스는 삼각무역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무역의 한가운데 거점이 되었다. 먼 뒷날 스페인은 카디스를 거점으로 아프리카와 카리브를 연결하는 삼각 중계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때의 거래 품목은 사자 가죽이 아니라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었다.
플루스 울트라
서기전 500년경 페니키아 상인 한노Hanno가 북아프리카 해안 카르타고 항을 떠났다. 50여 명의 노잡이가 노를 젓는 배 60여 척으로 이루어진 대선단은 남녀 3만여 명을 태웠다. 카디스와 모가도르를 지나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한 선단은 모로코 해안에 여러 도시를 세우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살게 했다. 대서양 연안 아프리카 땅에 식민도시를 새로 세우고자 함이었다. 아프리카의 바다는 뜨겁다. 적도 선을 중심으로 지구의 해류가 서로 반대로 흐르기 때문에 배 탄 자들은 뜨거운 태양에 타 죽기 십상이었다. 그러므로 뱃사람들은 적도 주변을 검은 바다라고 하여 가지 않았다. 한노는 두려움을 넘어선 최초의 지중해 인이었다. 네 차례의 항해를 거듭해 사하라 아래 오늘날 세네갈까지 진출했다. 한노는 <한노의 항해기>를 썼다. 15세기의 유럽인 포르투갈 엔히크가 서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한 일은 한노 이후 2,000년이나 지났을 때였다. 엔히크는 <한노의 항해기>를 읽어가며 코스를 그대로 따랐다. 한노가 유럽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항해왕' 엔히크 대신 한노를 기억했을 것이다.
티레 사람들의 신 멜가트Melgart는 우주의 질서를 지켜주고 지하 세계를 관장한다. 그런 멜가트는 항해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했다.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대서양 바다까지 나갈 때 페니키아 사람들은 멜가트가 그들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멜가트 신의 가호 아래 지브롤터 바와 세우타의 흰 속살을 드러낸 두 개의 암벽기둥 바깥에 카디스와 모가도르를 만들 수 있었다고 믿었다. 로마가 페니키아의 신화를 훔쳐오면서 함께 훔쳐온 신 멜가트가 헤라클래스로 변신했다. 아틀라스산맥을 넘어야 했던 헤라클레스는 앞을 가로막아 선 거대한 산줄기를 힘들게 넘지 않고 괴력으로 내리쳐 두 동강 내버렸다. 날카롭게 수직으로 잘린 산줄기 한 동강이 지브롤터의 타리크 바위고 다른 한 동강이 북아프리카 세우타 반도에 있는 몬테 아초다. 그때 잘려나간 두 동강 사이로 지브롤터 해협이 생겨났다. 그것이 헤라클레스가 만든 두 개의 기둥이다. 한노의 멜가트 신은 지브롤터를 벗어나 대서양을 항해하는 진취적인 신이었지만 로마의 신이 된 헤라클레스는 기둥 바깥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했다. 라틴어 Non Plus Ultra는 더 나갈 세상이 없다는 말이다. 헤라클레스를 믿는 로마 사람들에게 두 기둥은 더 나가서는 안 될 세상의 끝이었고 그래서 헤라클레스를 믿는 유럽인은 지중해 두 개의 기둥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노는 멜가트 신을 믿는 페니키아인이었으므로 지브롤터를 돌파해 대서양 바다를 항행했다.
+ 로마는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철저하게 문물을 파괴했다. <한노의 항해>가 파괴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카르타고 문헌이다. 현재는 사본만 남아있다. 항해 정보는 정확하지 않았다. 카르타고인들의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묘사된 장소를 확인할 수 없도록 불분명하게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 스페인 국장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기둥과 그 기둥을 휘감은 휘장에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라는 슬로건이 들어있다. 우리말로 바꾼다면 “세상 밖으로”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1,500년대 초 아메리카와 필리핀 등으로 식민지를 넓혀가던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압스부르고 황제인 카를로스 1세가 만든 국장이다.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유럽의 금기를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식민지를 정복하겠다는 스페인의 야망을 담고 있다. 카를로스 1세가 넘어서려 했던 울트라Ultra는 로마인의 세상 끝이었을 뿐,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울트라가 아니었다. 15세기 제국주의 스페인 왕가는 페니키아 사람들의 도전과 진취의 정신을 모방했고, 유럽 최강이 되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유럽인보다 2,000년 전에 플루스 울트라를 실천했다. 카디스가 그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