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70. 부뚜

by 조이진

부뚜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이들의 피부색이 카나리아섬에 사는 이들과 같다고 기록했다. 백인 같지도 않고, 흑인 같지도 않은, ‘요리된 모과와 같은 색이다’라고 했다. 피부가 갈색이라는 뜻이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들의 외모에 대해 여러 차례 기록했다. “그들은 체구가 멋졌다. 그리고 얼굴도 잘생겼다.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하지 않은 직모였고, 말의 갈기나 꼬리털처럼 거칠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몇 가닥을 땋아서 묶어 등 뒤로 길게 내렸다. 피부색이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이들은 카나리아섬에 사는 원주민들과 비슷하다”라고 적었다. 올리브와 구릿빛의 중간의 피부색,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피부색을 보자 콜럼버스는 관체족Guanches을 떠올렸다. 카나리아에 사는 원주민을 유럽인들은 관체족이라고 불렀다. 머리칼은 두껍고, 앞머리는 짧고 뒷머리는 길게 길러서 근육으로 떡 벌어진 어깨까지 닿았다. 콜럼버스의 다음 세대 정복자로 멕시코를 식민지로 삼은 헤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도 같은 생각을 정복일지에 적었다. 코르테스는 콜럼버스보다 더 확신했다. 코르테스는 유카탄에 사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서쪽 카나리아섬에서 보았던 원주민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단정했다. 중간 기착지로 거쳐 온 카나리아, 멕시코 정복을 떠나기 전에 오래 머물렀던 쿠바, 그리고 새로 정복한 멕시코에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코르테스는 멕시코에서 살던 이들이 유카탄반도를 떠나 쿠바를 거쳐 카나리아섬까지 옮겨와 살게 된 족속이라고 제 생각을 기록했다. 코르테스의 생각대로라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보다 대서양을 훨씬 오래전에 횡단했다.


콜럼버스가 보기에 갯가에 모인 원주민들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무기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듯했다. 원주민들은 대나무를 잘라 만든 죽창을 들고 나왔다. 창의 끄트머리는 물고기의 이빨을 깎아 묶었다. 부뚜butú라고 하는 뭉툭한 나무 몽둥이도 들고 나왔다. 원주민들은 부뚜막에서 불을 조절할 때 쓰는 막대기도 부뚜라고 했다. 십자군 전쟁을 치르며 철을 벼려 만든 긴 창칼과 대포, 철갑옷 같은 무구에 익숙한 콜럼버스의 눈에 그런 것이 무기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원주민들에게 쇠로 만든 무기는 없었다. 콜럼버스는 조심스럽게 원주민들에게 다가갔다.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에 달린 유리알과 빨간 모자 같은 것 몇 개를 손에 잡히는 대로 그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금세 경계심을 풀고 친근한 태도로 바꾸었다. 그런 하찮은 것에 태도가 이렇게 바뀌다니. 콜럼버스는 놀랐다.

columbus_at_hispaniola_from_th.jpg 건장한 신체의 원주민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경계하거나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외래인들의 물건과 교환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들은 왜 콜럼버스의 특정한 물건을 갖고 싶었을까?


원주민들은 앵무새 몇 마리를 가져왔다. 또 면을 실로 만들어 작은 공처럼 감은 실타래 뭉치, 삽 같은 따위를 여럿 가져왔다. 콜럼버스에게는 잡동사니들이었다. 원주민들은 가져온 것들을 주고 콜럼버스가 가진 유리알과 콜럼버스 옆에 앉아있는 매나 매방울과 바꾸길 원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이 기독교인들의 옷가지나 장식물이 아니라 이런 작고 하찮은 것을 원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20세기의 미국 인류학자들이 그 까닭을 밝혔다. 이들은 새를 하늘과 사람의 매개체라 여겨 신앙했고, 이들에게 방울은 왕이 하늘에 제를 올려 하늘의 뜻을 들을 때 흔들어 소리 내는 기물이었다. 그러니까 방울은 왕권이나 제사장임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 콜럼버스가 가져온 유리는 옥처럼 투명하여 진귀해 보였다. 이곳 원주민 사회에서 신분이 매우 높은 귀족들만 옥을 몸에 지닐 수 있었다. 철이 없는 석기시대에 옥은 아주 중요한 보석이었다. 콜럼버스가 보기에 저들은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가져와 유리구슬, 매방울과 바꾸고 싶어 했다. 옷도 벗고 다니는 야만인들. 이런 하찮은 것 따위를 원하는 어리석은 것들. 콜럼버스에게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두려움이 풀렸다.

다이노에게 매의 종을 주는 콜럼버스.jpg 콜럼버스가 다이노에게 매의 발에 매다는 종을 건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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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과 부뚜를 든 다이노. 여인들은 돌을 들고 이방인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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