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71. 신화

by 조이진

신화

콜럼버스의 생각은 <항해 일지>와 실제 그가 카리브에서 한 행위를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때 콜럼버스의 맞은편에 서 있던 카리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낯선 자들을 그렇게 대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윌리엄 키건은 카리브해의 역사와 종교를 연구한 인류학자다. 윌리엄 키건은 그것을 밝혀냈다. 카리브 사람들은 왜 외부인인 콜럼버스 일행에게 저항하지 않았는가.

윌리엄 키건은 콜럼버스가 진멸한 다이노민족을 연구한 인류학자다. 그는 다이노들이 왜 콜럼버스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순종했는지를 신앙과 신화의 관점에서 연구했다.

오히려 그들을 친절하게 환영해 맞아준 이유는 무엇인가. 콜럼버스가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린하고 송두리째 파괴할 때 왜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는가. 배 세척으로 상륙한 얼마 안 되는 유럽인들을 많은 수의 원주민은 왜 처음부터 제압하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순순하게 문을 열어주고 그들을 받아주었는가. 키건은 그 의문을 연구했고 자물쇠를 풀었다. 그의 연구 견해는 이렇다. 원주민들은 먼 하늘, 먼바다, 저세상 너머에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곳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왕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 왕을 ‘그레이트 칸’이라고 불렀다. 칸은 동북아시아에서처럼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왕은 죽은 자를 심판했다. 대왕은 사자를 보내 죽은 자의 영혼을 데려오게 했다. 사자는 사람의 영혼을 저 큰 물 너머 죽음의 세계로 데려갔다. 그런 사자를 ‘Stranger King’이라 했다. 우리로 치면 저승사자 격이다. 대왕의 사자는 죽은 자의 영혼을 데리러 올 때 배를 타고 큰 물을 건너서 왔다. 콜럼버스가 먼바다에서 큰 배를 타고 처음 나타났을 때 원주민들은 콜럼버스를 그레이트 칸의 사자로 받아들였다. 통나무를 반대로 갈라 그 속을 파낸 쪽배만 이용했던 원주민들에게 길이 30m 정도의 산타 마리아호는 거대한 규모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또 원주민들은 저승에서 온 사자들이 창백한 흰 얼굴에 긴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온다고 믿었다. 그들이 믿었던 대로 콜럼버스는 창백한 피부, 긴 머리칼에 이상한 옷을 입고 배를 타고 큰 물을 건너 먼바다에서 왔다. 원주민들의 생각에 그레이트 칸의 저승사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의 사자를 공격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원주민들의 사후관이요 신앙이었다. 오히려 죽음과 화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칸의 사자들을 후하게 대접하는 방법을 택했다. 많은 인구의 원주민들이 얼마 되지 않은 스페인군을 상대로 제대로 공격조차 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순식간에 침략당한 것은 그런 신화와 내세관 때문이었다는 것이 윌리엄 키건의 연구 견해다. 카리브뿐만 아니라 멕시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코르테스가 이끄는 600명의 스페인 식민 군이 상륙했을 때 목테수마 제왕은 자그마치 20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스페인군이 상륙했을 때는 마침 다른 종족을 상대로 한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 사기가 하늘에 닿을 때였다. 이방인들을 보자마자 바다에서 그들을 침몰시켜 뭍에 올라오지도 못하게 할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만일 목테수마 제왕이 ‘저들을 당장 몰살시키라’라고 했다면 유럽인들이 쇠 창을 들고 쇠갑옷을 입고 말을 탔을지라도 독화살과 독침을 가진 20만 대군의 원주민 사회가 유럽인들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윌리엄 키건은 이런 역사를 원주민들의 신화관으로 접근해 이해했다. 신화는 인식이고 개념이다. 원주민들은 콜럼버스 일행을 저승사자로 간주했다. 갑자기 나타난 저승사자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의 저승사자가 한꺼번에 작은 바닷가 마을에 나타났다. 저승사자들에게 순종하여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원주민들의 종교다. 콜럼버스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인들의 이런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은 순종하고 몸을 낮춰 엎드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어리석고 무력하며 무능력한 하급의 열등한 존재들이라고 인식했다.

윌리엄 키건의 저작. 다이노민족의 신화와 관습에 대해 기록했다.

콜럼버스가 금을 찾으려 함께 배를 타고 가자고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에게 콜럼버스가 말한 첫 제안이 금을 찾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그를 따라나서려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원주민들에게 저승사자와 함께 가는 길은 황천길이다. 스스로 황천길을 따라나설 원주민은 없었다. 바다 너머 저 세계에서 배를 타고 온 그가 크고 많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코치로 알아챘을 때, 원주민들은 저승사자가 많은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갈 큰 배라도 구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저승사자가 금을 찾고 있다고는 차마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정말로 금을 찾고 있었다. 그러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저승으로 데려가 버렸다. 창백한 얼굴로 큰 물 건너온 콜럼버스가 그렇게 많은 사람 목숨을 저승으로 데려가 버렸으니 그는 진짜로 저승사자였던 셈이다. 원주민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당신들은 저기서 왔는가?’라고 콜럼버스에게 물었다. 원주민들의 ‘저기’는 그레이트 칸,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저승이었다. 기독교도인 콜럼버스는 ‘저기’를 천국으로 이해했다고 항해 일지에 기록했다. 예수가 있는 기독교의 천국 말이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이 자신에게 ‘당신들은 기독교 세계의 천국에서 왔는가?’라고 묻는 것이라 이해했다. 콜럼버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끝에 갑자기 원주민들이 모두 땅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기독교인들의 손발을 잡고 울며불며 애원하고 사정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콜럼버스는 이곳 옷을 벗고 사는 원주민들이 기독교인들을 하늘에서 강림한 신으로 받아들인다고 벌써 간파했다. 콜럼버스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상황을 해석했다. 원주민들이 자신을 재림 예수로 받아들인다고 여겼다. 이것이 윌리엄 키건의 견해다.


1987년 미국의 고고인류학자들이 작은 섬의 해안마을 유적지를 발굴했다. 콜럼버스가 처음 상륙했었을 것으로 알려진 섬이다. 흙 속에서 동전과 수십 점의 유럽산 질그릇 조각, 10개의 목걸이 장식용 유리알, 2개의 구리 버클이 뒤섞인 채 출토되었다. 유리알은 온전한 것도 있지만, 깨진 파편도 있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동전은 1471년부터 1474년까지 스페인에서 제조된 것이었다. 다른 것들도 비슷한 시기에 3곳의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원주민들이 기독교인들과 물건을 교환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저들은 우리 선원들과 배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확실하게 믿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뛰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도망쳐 다녔고, 집을 버리고 마을 어귀로 몰려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저기 봐, 저기 봐. 하늘에서 온 사람들을 봐!’라고 소리를 질렀다”라고 썼다. 가는 곳마다 자신들을 천국에서 내려온 신으로 영접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들은 콜럼버스 일행의 물건이라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주고라도 서도 바꾸려고 들었다. 키건 같은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큰 물을 건너 배를 타고 저승에서 온 사자 콜럼버스 일행의 물건은 원주민들에게는 물건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물건을 구했다는 것은 저승사자를 만났다는 것이고, 만나고서도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은 이제 이승에서 오래오래 살도록 저승사자에게 확인받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콜럼버스 일행의 물건은 곧 저승사자를 만나 살아 돌아왔다는 징표였다. 그들을 친절하게 대접한 것도 저승사자를 잘 모셔야 저승에 갈 사람들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마을을 보존하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환대받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하찮은 물건이라도 감지덕지하며 바꿔 가는 원주민들을 업신여겼다. 기대와 다르게 이 섬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집도 아직 찾지 못했다. 콜럼버스가 꿈꿔온 지팡구에는 황금으로 덮인 집들이 줄지어 있어야 했다. 황금이 나지 않는 이 섬은 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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