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72. 가누아

by 조이진

과나하니

원주민들은 콜럼버스가 상륙한 이 작은 섬을 과나하니Guanahaní라 했다.

오늘날 바하마제도 와틀링Watlings 섬이 과나하니섬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위키피디아

원주민 말로 서쪽에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원주민이 뭐라 부르든 상관하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라 이름 붙였다. 성 구세주가 자신을 살려주어 이 땅에 닿았다는 의미였다. 구세주 산살바도르는 그때 콜럼버스와 유럽인을 구원했다. 그러나 아메리카인들에게는 참혹한 500년 식민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과나하니에서 산살바도르에 바친 감사 기도로 문은 열렸다.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에 처음 도달한 과나하니 섬 상상도. 콜럼버스가 '구세주'라는 뜻의 '산 살바도르'라고 이름붙였다. 이 섬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위키피디아

원주민들은 늘 바가지를 가지고 다녔다. 바가지는 박의 속을 파서 말려 만들었다. 바가지에 면을 얇게 꼬아 만든 명주 실타래며 곡식 같은 것들을 담아 와서는 콜럼버스의 물건과 바꾸자고 졸라댔다. 콜럼버스의 눈에 값나갈 만한 것은 없는 하찮은 것들뿐이었다. 그는 오직 바가지 안에 금이 담겨있는지만 살폈다. 원주민들도 원하는 것은 늘 같았다. 소리를 내는 방울, 그리고 유리알이었다. 그러던 차에 원주민 몇이 비중격을 뚫어 금으로 만든 작은 막대 장식을 걸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어디에 가면 많이 구할 수 있느냐고 손짓으로 발짓으로 물었다. 서로 통하는 말은 말이 아니었지만, 말은 이어졌다. 원주민들은 어느 쪽을 가리키며 무슨 말을 했다. 콜럼버스는 그곳의 왕은 금으로 만든 배를 갖고 있을 만큼 많은 금을 갖고 있다고 원주민이 말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콜럼버스는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대로 들었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서 고백한 바 있다.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정반대로 알아들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금으로 만든 배가 세상에 있을 리도 없다. 더구나 카리브해 섬들은 금이 많이 나지 않는다. 금으로 만든 배는 유럽인들의 신화나 판타지 모험 이야기에나 있을 법한 상상의 물건이다. 콜럼버스는 금에 대해 관여도가 지극하게 높았다. 1차 항해를 기록한 일지에 두 번째 많이 기록된 단어가 ‘골드’다. 100회 이상 금을 언급했다. 금에 혈안이 된 그의 모습을 그의 항해 일지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원주민들은 콜럼버스가 많은 사람을 태우고 저승으로 갈 큰 배를 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쪽 큰 섬에 가면 큰 배가 있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자기네 섬 말고 이웃 섬에 가서 사람을 저승에 데려가라고 권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금으로 된 배가 있다는 그곳에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곳에 함께 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A-dugout-canoe-used-by-the-Taino-as-shown-by-Benzoni-1563.png 콜럼버스가 최초로 기록한 가누아. 영어 카누가 되었다.

가누아

어디에 가면 황금이 많이 있는가. 콜럼버스가 과나하니 섬에 머물면서 여러 원주민에게 묻고 또 물었다. 원주민들은 작은 섬들 너머 바다를 가리켰다. 바하마 제도 안쪽이다. 그곳을 가리키며 “지ci, 바우bao”를 반복하며 외쳤다. 콜럼버스가 손짓으로 말하고 발짓으로 헤아려도 “지바우”라는 말의 뜻은 알 수 없었다. 원주민 언어를 연구하는 20세기 인류학자들이 밝혀내기를 “지ci-”는 “집house”, “바우bou”는 “바위 산stony mountain”이라고 했다. ‘지바우’는 ‘집이 있는 큰 바위house on stony mountain”라는 뜻이다. 뜻이야 알 수는 없었지만, 콜럼버스는 그곳을 “지바우Cibou”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곳뿐 아니라 많은 곳을 지바우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스페인 사람들은 지명으로 기록했다. 인류학자들은 “집이 있는 바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종교 시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바위를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초가집을 지어 하늘신에 제를 올렸다. 지바우는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도 있었다.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같은 카리브해 섬나라들에도 있었고,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에는 그 크기가 매우 큰 것이 여럿이었고, 미시시피강 주변에도 그 수가 무척 많았다. 심지어는 치첸이차Chichén Itzá 피라미드가 있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와 쿠바섬 서쪽 끝 사이의 깊은 바다 밑에도 거대한 피라미드 군락이 훼손되지 않고 잠겨있다.


원주민들이 말하기를 그들의 배로 한나절 반가량 가면 그 섬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그 속을 숯으로 태워 재를 돌칼로 파내서 쪽배를 만들었다. 콜럼버스의 눈에 유럽 배와 달리 돛이 없었다. 그런 통나무가 흔들리지 않고 가누며 물 위를 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배에 대해 말할 때 ‘가누아canoa’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콜럼버스는 ‘가누아’가 그 배의 이름이라고 알아들었다. 그래서 항해 일지에 ‘가누아Canoa’라고 기록했다. 그들은 카누를 타고 다녔다. 통나무 속을 그렇게 파낼 수 있다는 것에 콜럼버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0명인가 45명인가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큰 카누도 보았다. 한 명만 타고 있는 작은 것도 있었다. 이 통나무배. 어디서 본 듯했다. 낯이 익었다. 번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래전 영국을 지나 아이슬란드 바다를 건넌 배를 탄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원주민이 떠올랐다. 그 원주민의 피부색이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들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통나무배가 그때 보았던 통나무배와 똑같았다.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이 원주민들도 허드슨만의 그 사람들처럼 노를 저었다. 콜럼버스는 이들의 노가 유럽에서 빵을 구울 때 화덕에 넣다 뺐다 하는 삽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삽을 닮은 그 생김새도 허드슨만에서 보았던 것과 서로 같았다. 원주민들은 그런 것을 저면서도 뒤집히지도 않고 아주 빠르게 물 위를 이동했다. 그때도 지금도 놀라웠다. 바닥을 깎아 편평하게 만든 배는 만들 때도 중심을 잘 가누어 만들어야 하지만, 노를 젓는 이들도 중심을 잘 가누어야 한다. 그래야 통나무배가 뒤집히지 않는다. 한 명이 중심을 가누기도 어려울진대 수십 명이 탄 배가 중심을 잘 가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테다. 이들은 카누가 뒤집히면 한꺼번에 물속으로 뛰어들어 배를 다시 바로 세웠다. 콜럼버스는 한 명이 탄 카누라도 스페인 보트보다 훨씬 빠르다고 생각했다. 어느 원주민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이 카누에서 저 카누로 옮겨 타기도 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이 말한 섬으로 가기로 했다. 원주민 6명을 배에 태웠다. 새로운 섬에 도착했을 때 통역해주고 길을 안내해줄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스페인 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루 이틀 만에 배워지는 언어는 없다. 그들과 말이 잘 통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원주민 가이드들은 주먹만 한 크기의 마른 빵을 실었다. 그들은 호리병박에 물을 담아 다녔고, 갠 붉은 진흙을 가지도 다니며 얼굴과 몸에 칠해 색을 냈다. 그들이 말린 잎사귀를 스페인 선원에게 선물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에게 선물을 하는 잎사귀이니 그들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것일 것이리라고 짐작했다. 인류학자들은 원주민들이 이때 준 잎사귀가 담뱃잎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무뿌리와 풀, 나무 잎사귀를 먹기도 하고, 말려서 약초로 썼다. 여러 풀을 제례에서 중요하게 썼다. 콜럼버스는 답례로 그들에게 여러 가지 하찮은 것들을 선물로 주었다. “저들이 우리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하려고 그랬다. 하느님의 뜻대로 폐하께서 다른 예수님의 종을 이곳에 보내실 때 저들이 그들을 기쁘게 맞을 테고, 그래야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가져다 바칠 것이기 때문이다.”


+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그 속을 숯으로 태워 재를 돌칼로 파내서 쪽배를 만든 방식은 우리나라 경남 창원군 비봉리 패총서 발굴된 통나무배 제작 방식과 같았다.

21598_32182_197.jpg 창녕 비봉리 패총서 발굴된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통나무 쪽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 유물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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