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가누아
선교
콜럼버스는 쿠바를 탐사하던 중에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아는 한 이들은 종교를 믿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십자가 같은 성물에 기도를 올리는 자를 여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구세주와 성모 마리아에 대해 가르쳐주니 비로소 그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손으로 십자가 모양의 성호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종교가 없다. 그래서 이들을 기독교화하기는 아주 쉬우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영리해서 아주 빨리 이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생각하는 종교는 세 개뿐이었다. 기독교와 적그리스도인 이슬람교, 유대교가 그것이다. 이슬람교나 유대교의 상징물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곳 원주민들은 어느 종교도 믿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콜럼버스가 하늘을 가리키며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 관해 설명하니 다이노들이 기독교 신에 대해 알아들은 듯했다고 오해했지만, 다이노들의 신화관으로 볼 때 콜럼버스는 하늘 너머 저승에 있는 염라대왕에 대해 설명한다고 다이노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다이노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려 시도했다는 기록은 이 한 번이 유일했다. 두 번째 항해로 카리브해에 와 본격적으로 식민 통치를 시작했을 때 그는 다이노에게 선교하고 세례 하는 일을 금지했다. 다이노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노예로 부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굼벵이
콜럼버스는 각 섬에 들를 때마다 원주민 몇몇씩을 반드시 배에 태웠다. 섬마다 갖는 자연의 특징과 산물을 스페인 국왕 부부에게 보고하려는데, 원주민도 보고할 품목으로 삼았다. 한 번은 쿠바섬에서 남자와 여자, 아이들을 포함해 다이노 12명을 붙잡아 태웠는데, 돛을 올리고 배가 떠나려 할 때 엄마와 함께 붙잡힌 두 아이의 아버지가 카누를 타고 콜럼버스의 배에 다가와 서럽게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차라리 자신도 배에 태워 처자식과 함께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자식이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큰 물 건너 황천길 떠나는데 자신만 남아 살아갈 수 없으니 차라리 함께 죽겠다는 뜻이었으리라. 다른 남자도 와서 붙잡힌 아내와 함께 가게 해달라고 했다. 콜럼버스는 이 두 남자의 호소를 반가이 여겨 그들도 배에 태웠다. 이런 이야기가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콜럼버스 일행을 처음부터 적으로 규정했다면 곧바로 저항하고 싸웠을 것이다. 단 몇 명에 불과한 기독교인을 그 많은 인구가 맞서 싸우는 일이 어려운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신화관은 기독교인들을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그저 울고불고할 뿐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체념하여 순순하게 기독교인들을 받아들였다. 한쪽은 노예로 삼으려는 종교관, 다른 한쪽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종교관. 이 두 신화관이 다이노 불행의 세 번째 근원이었다.
콜럼버스는 어딜 가든 묻는 단 한 가지 질문을 또 물었다. 어디에 가면 금이나 진주, 향신료가 많이 나느냐. 콜럼버스는 쿠바섬으로 오면서 동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를 보아두었다. 열대의 더운 날씨와 습한 산이 있으므로 그 산줄기에는 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금을 찾지 못했다. 원주민들은 하나같이 손질 발짓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가면 금이든 진주든 향신료든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쿠바섬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 또 다른 섬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가리키며 ‘보이오Bohío’라고 말했으므로 콜럼버스는 ‘보이오’를 나라나 땅의 이름으로 알아들었다. ‘바로배꾸어’라는 말도 자꾸 했다. 콜럼버스는 다이노들이 ‘보이오’와 ‘바로배꾸어’라고 자꾸 말하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일지에 적었다. 나중에야 스페인 사람들은 이 말들을 알아들었다. ‘보이오’는 창문이 있어 밖이 보이는 집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기록했다. 푸에르토리코에는 콜럼버스 시대에 있었던 보이오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기둥만 있고 사방으로 열려있어서 마을이 잘 보이는 정자와 아주 비슷하다.
20세기 인류학자들은 가시관Kassiquan이나 보이게bohiques가 고을의 정사를 의논하는 건축물을 보이오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산속에서 혁명을 준비할 때 보이오에 기거했다고 말했는데, 보이오는 풀을 엮어 지붕을 이은 가난한 민중의 초막으로 그 뜻이 변했다. 가시관은 다이노들을 다스리는 군장 지도자를 가리키는 호칭이며, 보이게는 마을과 나라의 제사와 의술을 담당함으로써 가시관을 보위한 관직을 말한다. 가시관은 정치 지도자이자 당주의 역할을, 보이게는 제사를 주관함으로써 가시관을 보위하는 제주의 역할을 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마을 어른들이 팔각정처럼 생긴 마을 입구 정자에 모여 마을 일을 의논했듯이 카리브에서도 군장인 가시관과 보이게 같은 지배층도 보이오에서 마을과 가문의 중대사를 의논했다. 원주민이 동쪽을 가리키며 ‘보이오’라고 말했던 것은 동쪽에 가면 큰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큰 보이오가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쿠바를 기준으로 해 뜨는 동쪽에 있는 큰 섬은 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나뉘어 있는 히스파니올라섬이었다. 그곳에는 쿠바섬보다 강력한 왕권이 있는 군장 사회가 있었다. 그 섬이 카리브 지역 다이노 민족들에게 왕이 사는 도읍이었다. 역사가들은 당시 히스파니올라섬에 100만 명, 쿠바섬에는 60만 명의 다이노가 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쿠바에 10만~20만 명이 살았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다이노는 멕시코와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폭넓게 퍼져 살았던 민족이었고,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히스파니올라섬이 다이노 사회의 중심이었다. 다이노들은 지금 그런 동쪽 섬 히스파니올라로 가면 큰 ‘보이오’가 있고, 금은 그곳에서 많이 난다는 정보를 콜럼버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금이 있다는 히스파니올라섬으로 방향을 잡아 쿠바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다이노들은 살찐 왕거미나 통통한 굼벵이도 잡아먹었다. 콜럼버스는 그들이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먹는다고 적었다. 굼벵이는 썩은 통나무나 초가집 지붕 속 썩은 지푸라기 속에서 잡는다. 두엄 속에서도 잡는다. 굼벵이는 고단백이다. 단백질원이 부족한 다이노들은 식용곤충을 단백질원으로 잡아먹었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야만적인 모습은 굼벵이나 거미를 잡아먹는 일만이 아니었다. 다이노들은 물고기를 익히지 않고 곧바로 날로 먹기도 했다. 심지어 물고기를 불에 구워 요리하고 나서도 생선의 눈부터 파서 먹었다. 기독교 문화는 생선을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것을 금했다. 콜럼버스가 보기에 엽기적이며 기괴한 자들이었다.
계절에 따라 바닷속은 물의 결이 달라진다. 때에 따라 다른 물고기들이 다른 곳에서 잡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아는 바닷가 다이노들은 계절에 따라 이 바다 저 바다로 옮겨 다니며 먼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 콜럼버스는 이 모습을 보고 ‘이 풀밭에서 저 풀밭에서 풀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양 같다’라고 썼다. 유럽인에게 양은 순하고 미련하여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미욱스러운 짐승이다. 양은 늑대에게는 좋은 사냥감이었다.
콜럼버스는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강둑을 따라 몇 채의 집이 있었다. 어느 집에는 높은 장대에 두 개의 바구니가 매달려있었다. 하나에는 벌통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죽은 자의 해골이 담겨있었다. 다른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콜럼버스는 이 해골은 이 집을 세운 자의 것일 것이고 추측했다. 궁금했으나 물어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보자마자 모두 놀라 나루로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나루에는 카누가 있어 저승사자보다 더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이 강에서 콜럼버스는 150명도 너끈히 탈 수 있을 큰 카누를 보았다고 적었다. 통나무 하나를 깎고 파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이 탄 카누가 뒤집히지 않으려면 모두 하나가 되어 중심을 잘 가누어야 할 것이었다. 그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 그 시대 유럽의 자연과학은 황금은 뜨거운 태양이 쏟는 볕과 습한 기온이 뭉쳐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 우리 전통사회에서 마을 어른들이 팔각정처럼 생긴 마을 입구 정자에 모여 마을 일을 의논했듯 카리브에서도 군장인 가시관과 보이게 같은 지배층도 보이오에서 마을과 가문의 중대사를 의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