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82. 바라코아

by 조이진

바라코아

쿠바섬 동쪽 끄트머리 바라코아Baracoa만에 들어와 닻을 내렸다. 초승달 같은 만은 카카오, 코코넛, 바나나, 대왕 야자수 같은 신비로운 나무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였다. 바라코아는 신비감이 느껴질 만큼 바다는 잠잠했고 뭍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서 평생 수많은 곳을 항해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곳은 여태 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배를 뭍에 댔다. 콜럼버스는 예배를 위해 쿠바의 나무를 베 십자가를 만들어 세우게 했다. 바닷가 모퉁이 야트막한 언덕에 십자가를 세웠다. 감사 예배를 올렸다. 대서양을 건넌 유럽인들의 첫 기독교 예배였다. 1492년 12월 1일의 일이다. 이 십자가가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세워진 십자가다. 본디 아주 단단한 목재인 쿠바산 마호가니 나무로 만들어진 데다 500년 세월 동안 짠 바닷바람에 절어 여전히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콜럼버스는 카리브 일대에서 29개의 십자가를 직접 세웠다. 모두 없어졌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진품은 이 하나다. 현재 바라코아 시내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카리브에서 처음 세워진 십자가는 바라코아에서 가장 큰 호텔인 포르토 산토 호텔의 뒤편 해안가 절벽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있다. 지금은 진품을 대신해 복제된 십자가가 별 존재감 없이 서 있다. 쿠바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같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 국가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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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코아는 작은 도시다. 그런데도 주민도, 운전기사도 그 유물에 대해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십자가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접촉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유물이다. 이 땅 바라코아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식민지 수도이기도 했다. 콜럼버스 다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총독으로 온 벨라스케스가 쿠바섬의 수도로 건설했다. 그러므로 바라코아는 쿠바에 세운 최초의 식민지 거점이었다. 쿠바 정부는 2011년 8월 15일 쿠바 건국 500주년을 기념하여 쿠바 최초의 도시인 바라코아를 상징하는 이 십자가를 국보로 지정했다.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방문했었다. 먼 길을 돌아 바라코아까지 왔다. 이 십자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을 최초의 쿠바 식민지 수도로 정하기 전에도, 그리고 콜럼버스가 이곳에 와 십자가를 세우기 전에도 쿠바 원주민 다이노들에게 이곳은 큰 고을이었다.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에는 ‘-코아coa’로 끝나는 지명이 현재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이런 지명은 모두 다이노들의 고유한 고을 이름이고, 과거에 큰 원주민 군장 사회가 있었던 곳의 이름이다.

cuba-baracoa-standbeeld-christopher-columbus.jpeg 바라코아 해변에 세워진 콜럼버스 상. 오른쪽에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다.

콜럼버스는 쿠바섬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여러 차례 배를 멈추고, 뭍에 내렸다. 콜럼버스의 배는 3척이었다. 그중 하나인 핀타Pinta호의 선장 핀존은 그렇게 시간을 끄는 콜럼버스가 무척 못마땅했다. 어서 빨리 황금을 찾아야 할 판에 수시로 배를 대고 감사 예배나 올리고 십자가를 세우면서 시간을 끄는 일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했다. 더군다나 콜럼버스가 항해의 의사결정을 다이노 가이드에게 의존하는 꼴도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다이노 가이드는 곧장 황금이 널린 곳으로 가지 않고 바닷가 작은 마을을 지날 때마다 배를 세웠다. 본디 급한 일 없이 살아가는 원주민들은 카누를 저어 가다 이웃 마을에 들러 잡은 물고기를 서로 다른 물건과 교환하기도 하고, 마을 소식도 나누는 등 마실 다니듯 카누를 탔다. 황금에 초조한 핀타호가 콜럼버스를 이탈했다. 핀타호는 황금이 많이 난다는 히스파니올라섬으로 곧장 가버렸다.

바라코아만. 스페인이 최초로 세운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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