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히스파니올라
히스파니올라
그해 12월 5일 수요일에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했다. 이 섬은 크기가 그란카나리아Gran Canaria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섬은 들판도 나무도 스페인을 연상하게 했다.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아 올렸더니 스페인에서 잡히는 물고기들과 종류가 비슷했다. 콜럼버스는 이 섬의 이름을 스페인이 연상되게끔 짓겠다고 생각했다. 나흘 뒤인 9일에 그가 이 섬을 히스파니올라라고 이름 붙였다. 본명은 라 이슬라 에스파니올라La Ysla Española다. 히스파니올라는 오늘날 아이티 공화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섬이다. 히스파니올라라고 부르기 전까지 콜럼버스는 이 섬의 이름을 ‘보이오’라고 생각했다.
이 섬 바닷가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10일 동안이나 배를 멈추고 배 위에서 간간이 보이는 섬 원주민들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배가 가까운 바다에 와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앞에서 들렀던 섬에 사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기록했다. 20세기 인류학자들도 이곳 사람들은 쿠바 원주민들과 같은 민족인 다이노라고 했다. 이 섬의 바닷가 다이노들도 모두 벗고 살았다. 망토도 치마도 입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모두 벗었다고 하여 나체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여자들은 면으로 만든 짧은 치마를 입었고, 남성은 성기와 사타구니 주위만 가렸다. 비가 많이 오는 열대지역에서 옷을 더 입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콜럼버스에게는 이들의 복장이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비쳤다. 모두 나체로 벗고 산다는 콜럼버스의 표현은 유럽인들에게는 새로 점령한 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을 미련하고 나약한 야만족, 얼마든지 쉬 범할 수 있는 미개인으로 인식하게 하는 편견을 심어주기에는 아주 적당한 수식어였다.
황금에 조급했지만, 그는 10일간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엎드려 사냥감을 지켜보는 맹수의 눈빛으로 기다렸다. 그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지팡구를 찾아오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냈다. 황금의 섬 지팡구. 그는 지금 그 지팡구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평생을 소원한 사냥은 시작된다. 수색대를 내려보냈다. 기독교도들이 다가가자 원주민들은 깊이 우거진 숲 속으로 곧장 내뺐다. 겨우 한 소녀를 붙잡아왔다. 그 소녀는 비중격을 뚫어 판판한 금 막대를 걸어 장식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그 소녀를 건드리지 말고 마을로 데려다주라고 명령했다. 적대감을 주어서는 더 큰 것을 얻을 수 없었다. 더 큰 것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금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음날 그는 아홉 명의 수색대를 총과 창, 칼로 단단히 무장시켜 다시 마을로 들여보냈다. 고을에는 집이 1,000채가 넘었다. 마을 어귀로 들어오는 기독교인들을 보자마자 놀라 모두 숲 속으로 도망쳤다. 콜럼버스와 동행한 스페인 기록자는 이 모습을 “마치 갈고Galgo에게 쫓기는 멍청한 토끼 새끼들”이라고 묘사했다. 또 이렇게 썼다. 뭍에 발을 대자마자 기독교인들이 한 여인을 붙잡아서 “몸을 벗기고 자연의 본성을 채웠는데, 이 여자를 배에 데려와 술과 음식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 돌려보냈더니 옷이란 것을 처음 본 미개인들이 해안가로 몰려나와 스페인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환호했다”라고 기록했다. 기독교인을 따라 과나하니부터 따라온 가이드가 숲에 들어가서 ‘저들은 하늘에서 온 자’들이라고 확신에 차 설명했다. 그들이 숲에서 나와 기독교인들에게 허리를 숙여 조아리며 손으로 기독교인들의 얼굴과 머리를 만져보며 두려워했다. ‘하얀 얼굴을 한 남자들’이 왔다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며 황망했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마을로 데려가 잔치를 열어 먹을 것을 주고, 기독교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무 대가도 교환도 없이 무엇이든 가져다 바쳤다. 기독교도들은 이보다 더 좋은 천국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심지어 그들은 마을을 떠나지 말고 하룻밤이라도 묵어가라고 사정했다. 귀한 손님을 대하는 그들의 예의였다. 기독교인들은 ‘이 땅은 더없이 살기에 좋은 땅이고, 원주민들이 먹는 음식도 이전 섬보다 더 맛있고 다양하며, 사람들은 깨끗하고 친절하고 예의가 아주 바르기도 할뿐더러 용모와 체격도 더 멋지고 잘 생겼다’라고 콜럼버스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섬의 가운데 동쪽으로 들어가면 많은 금이 있다는 원주민들의 말도 보고했다.
보고받자마자 콜럼버스는 즉시 돛을 올리라 명했다. 항해 중에 큰 파도를 만났다. 그 파도 속에서 한 명이 탄 작은 카누를 발견했다. 이 작은 카누는 그 큰 파도에도 뒤집히지도 않고 파도를 잘도 타고 넘었다. 그 재주가 보기에 놀라웠다. 그를 배에 태워 마을로 데려가 주었다. 여러 선물도 손에 쥐여 주었다. 콜럼버스는 속마음을 숨기고 친절을 베풀었다.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보면 무서움과 경외심으로 도망쳐 버린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늑대가 양에게 접근할 때처럼 살금살금 친절과 선물을 앞세워 접근했다. 콜럼버스의 의도대로 카누를 탄 남자는 마을로 가 스페인 사람들이 준 선물이며 처음 본 배에 태워 준 일 같은 친절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아마 저승사자를 만난 일이며, 저승사자가 자기를 살려주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많은 원주민이 기독교인들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이것저것 잔뜩 가져와 바쳤지만, 콜럼버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모조리 쓸모없고 하찮아 마뜩잖은 것들뿐이었다. 눈이 갈만한 것은 오직 그들의 비중격마다 걸려있는 금 코걸이뿐이었다. 오랫동안 그물을 놓고 기다리다 그물을 걷어 올렸는데 작은 송사리 몇 마리만 그물 속에 들어있을 때의 실망감처럼 불쾌했다. 황금 지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번에도 콜럼버스는 이 금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고, 다이노들은 섬 저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많다고 손짓하고 발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