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구가나가리 가시관에게 후하게 대접받아 흐뭇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 콜럼버스는 엄청난 소리를 들었다. 정박한 배가 산호에 걸려 배 밑바닥이 터지는 소리였다. 산타 마리아는 빠르게 침몰했다. 못쓰게 된 배를 버리고 다른 배로 짐을 옮겨야 했다. 두 배에 탔던 선원과 짐을 한배에 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독교도가 구가나가리 가시관에 이런 사정을 알리며 도움을 청하자 “이 소식을 들은 원주민 왕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초에 깊이 슬퍼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마을 사람 모두를 여러 대의 큰 카누에 태워 우리 배로 보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아주 빨리 짐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짐을 옮겨주고, 앞으로 해안가에 살게 될 선원들이 사용할 물건들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런 뒤에도 수시로 지위 높은 자를 제게 보내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져다주려 했습니다. 우리 스페인 어디서도 이렇게 엄청난 친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감히 폐하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우리 짐을 자신의 거처 옆에 가져다 놓고 무장 군인을 선발해서 그 짐을 지키게 했고, 밤새 철저히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비워 우리가 며칠이고 묵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왕을 포함한 모든 자들이 우리의 재난에 눈물 흘리며 슬퍼했고, 아주 많이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무나 인정 많고, 욕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주 유순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사람들은 없고, 이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감히 폐하께 말씀드립니다. 이 사람들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늘 신사같이 정중하고 언제나 웃으며 말하는데, 이들이 하는 말투는 정말로 듣기에 부드럽고 상냥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이 사람들은 어머니 배에서 나올 때처럼 모두 벗고 지냅니다. 폐하는 저의 이 말씀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너무나 예의 바르고 친절합니다. 이들의 왕은 놀라울 만큼 수준 높은 품격과 권위를 갖추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아주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어 무엇이든 잘 기억합니다. 또 호기심이 많아 무엇이든 보여 달라고 하고, 그런 다음 보는 것마다 무엇이든 이것이 무엇이냐, 어디에 쓰는 것이냐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러므로 노예로 쓰기에 참 좋습니다.” 콜럼버스는 “폐하께서 여기 있는 모든 원주민을 붙잡아 카스티야에 노예로 보내시라면 얼마든지 그렇게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 스페인 군인 50명만 있으면 이들 전부를 복속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부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야만적이지도 않아서 노예로 삼기에 더욱 좋습니다”라고 기록했다.
부서진 산타 마리아호를 뜯어내 섬에 모래밭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다이노들의 도움이었다. 이 지역 가시관 구가나가리는 산타 마리아호의 짐과 선원을 구해주었다. 갑판에 댄 나무판이며 못 하나까지도 모두 끄집어내 모래밭에 가져다 모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구해타dagujeta’라고 말했다. 이 말의 뜻은 바늘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스페인 선원들을 그의 처소로 데려갔다. 이 장면을 목격한 스페인 선원 라스카사스Las Casas는 “이들은 놀랍도록 왕의 명령에 잘 따랐다. 모든 귀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잘 지휘했고, 왕의 행동은 품위가 있었고, 다만 손짓만으로 지휘했지만 모두 금세 알아들었다”라고 기록했다. 이날이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으므로 콜럼버스는 이 모래밭 집을 지은 곳을 라 나비다드La Navidad라 이름 지었다. 다이노에게 죽임을 당하는 대신 따뜻하고 친절한 환영을 받아 아메리카 땅에 최초의 유럽인 거주지를 세웠다. 도움을 받아 모래밭 집이 지어졌다. 이 일로 이 지역 가시관 구가나가리는 스페인, 유럽, 기독교 세력과 동맹관계를 맺은 첫 아메리카 인이 되었다. 구가나가리에는 안 됐지만, 콜럼버스는 생각이 달랐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요량이었다. 펠리스 나비다드, 축복받은 콜럼버스의 크리스마스는 행복했다. 나비다드에서 크리스마스 감사 예배를 올렸다. 콜럼버스는 이 집을 보며 최초로 스페인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기록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 모래밭 위에 세운 집이 새로운 예루살렘 천년왕국을 세운 전초기지였을 것이다. 이제 이 땅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다. 그의 신은 이곳에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여기다 배를 침몰시킨 것이라고 풀이했다. 감사 기도를 올리는 동안 콜럼버스는 자신에게 그렇게 환대해 준 원주민들을 ‘노예로 쓰기에 딱 좋은 자들’이라고 되새겼다. 그리고 좋은 노예들을 인도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할렐루야 감사했다. 구상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 검은 황금이 널려 있듯이 이곳에도 모과 빛 황금이 숱하게 걸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