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93. 편두

by 조이진

편두

머리도 하나고, 온전한 사람이었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괴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럽 사람들의 눈으로는 신대륙에서 잡아 온 자들은 분명 괴상했다. 자신들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머리카락이 달랐다. 검은색인 것도 그랬지만 머리칼이 굵었고, 아직 어린 자는 그것을 땋아서 묶어 내렸다. 정수리에서 묶어서 하늘을 향해 틀어 올린 자도 있었다. 그들의 앞이마도 눈에 띄게 넓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정수리가 이상하리만큼 길었다. 납작 머리 편두를 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은 편두 머리를 이날 처음 보았다. 카리브에서 데려온 자들은 편두를 하고 있었다. 유아 때 이마를 무거운 돌로 눌러 편두를 하면 정수리가 위로 길쭉해진다. 세비야 광장에 전시된 카리브 사람들은 긴 머리뼈를 앵무새의 반짝이는 깃털을 꼽아 현란하게 장식했고, 일본 옷 훈도시 같은 차림의 하얀 면포로 성기만 가렸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영락없는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 몸에 흰 물감을 보디 페인팅했다. 다이노들은 자기의 은밀한 부위를 가려주는 그런 치마를 나구아naguas라 불렀다. 비중격을 뚫어 코걸이를 했고, 귀를 뚫어 크고 긴 귀걸이를 찼다. 이날 이들의 몸과 모습은 이국의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을 보여주는 작은 엑스포였다. 낯설어 두려워하는 카리브의 이방인들에게 새로 스페인식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덥고 습한 카리브에서 옷을 입지 않고 살던 이방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축제를 즐기는 자들을 더 즐겁게 할 아이디어였다. 빨간 반바지와 느슨한 셔츠를 가져다 입혔다. 그런 옷은 어릿광대 종글라르들이 피에로로 분장할 때 입는 연출 의상이었다. 그리고 땋아서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리에 씌울 고깔모자 같은 것을 이것저것 씌워주었다. 고깔모자는 유대인을 종교재판에서 고문하고 목을 자르고 산채로 불태워 죽일 때 씌우는 도구였다. 그 모자에 깃털도 꼽고 조개도 붙여 주면서 이들의 금귀고리와 코를 뚫고 걸어 장식한 금 막대기와 잘 어울리는지를 놓고 낄낄댔다. 신세계는 신기하고 놀라움이 가득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소와 조롱이 마땅한 미개의 야만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퍼졌다.

다이노들은 흰 무명천 나구아를 입었다.


이때 기록된 왕실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유럽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 처음 보는 머리뼈 형태는 카리브에서는 널리 퍼진 스타일이고, 앞이마가 넓고 판판한 머리를 가진 자들일수록 다이노 사회에서는 지배층으로 존경받는다고 했다. 이 안모는 신생아가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아직 머리뼈가 접합되지 않고 연할 때 그 어머니가 두 개의 대왕 야자 나무판을 대고 눌러 형성한다는 것도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편두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오직 동북아시아 단 임금 후손들만의 독특한 풍습이었다. 그런 편두인이 왜 카리브해에도 살고 있었는가?


세비야 군중들이 그렇게 들떠 있을 때, 유럽이 인도에서 잡아 왔다는 이상한 생명체에 대한 소문에 떠들썩해 있을 때,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그리고 콜럼버스 사이에서는 부지런히 서신이 오고 갔다. 국왕 부부는 콜럼버스에게 새로 찾아낸 땅을 어떻게 식민지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곧바로 요구했다. 콜럼버스는 보병 5만과 기병 5천을 요구했다. 콜럼버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황금이었다. 누구에게 금을 찾는 역할을 맡길 것인지, 횡령과 도적으로부터 황금을 지키고 운반할 방법은 무엇인지, 그중 얼마만큼의 금을 스페인 교회와 로마 교황청에 각각 배분해 줄 것인지 퍼센트에 대해 협의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보물 상자를 몇 중 안전장치로 설계해서 제작할 것인지, 두 개의 자물쇠를 채우는데 그 자물쇠를 각각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이런 것까지 국왕과 편지로 고민을 나눴다. 행복한 고민. 콜럼버스뿐 아니라 페르디난드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동방견문록에서 읽었던 지팡구의 황금 지붕 몇 채만 뜯어도 배가 황금으로 가득 찰 것이었다. 그런 배가 끝없이 카디스를 지나 세비야로 들어올 참이었다. 수천 톤의 황금을 보관할 왕의 보물 창고를 어디다 만들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이런 앞서간 기대가 뒷날 콜럼버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식민지에서 쓸어 담은 황금을 가득 채워 만선 하기는커녕 카리브 식민지로 떠난 자들이 대부분 굶어 죽었거나 빈손인 채로 되돌아오자 콜럼버스를 체포하여 본국으로 압송했고, 계약상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지금 그들이 함께 꾼, 지나치게 환상했던 행복한 고민이 화근이었다. 콜럼버스가 만일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로서 길을 갔더라면 황금 수확은 부족했을지라도 동업은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도 황금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콜럼버스는 어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해 가야 했으므로 그런 판타지를 조장했다. 자신의 목표는 새로운 땅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 최고 귀족으로 살고, 팔로스항구에서 손목을 잡고 함께 걸었던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 이 땅의 통치권을 대대손손 유산으로 주는 것이다. 그것이 국왕 부부와 맺은 계약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식민지의 최고 통치자인 콜럼버스는 곧장 7~8천 명의 스페인 군인을 파병해 줄 것을 건의했고, 적어도 4개의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했다. 이 군인들은 모든 마을을 식민지로 만들고 관리하고 경영할 것이다. 그래서 금과 돈을 뽑아낼 것이었다. 그는 늘 종교재판이 두려웠다. 자신에게 유대인의 피가 섞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왕과 교회로부터 자기와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병력이 필요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 콜럼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