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신세계
신세계
바르셀로나에 있는 왕실 궁전에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은 테닐 살롱Salón del Tenill 앞 계단광장이었다. 이 궁전은 비지 고트 왕조가 지었다. 고트의 건축 양식이 전형적으로 깃든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바르셀로나는 페르디난드가 통치하는 아라곤에 속해있다.
이 궁전은 마요르카Majorca를 정복한 페르디난드의 선대 아라곤 왕이 주로 살았던 곳이다. 아라곤은 이 섬을 전진기지로 삼아 시칠리아를 정복했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정복했고 그리스 동쪽의 에게 바다까지 장악했다. 마요르카는 아라곤의 해외 팽창과 식민지 확장 사업을 상징했다. 페르디난드는 이곳을 콜럼버스 환영식장으로 선택했다. 아라곤에게 이런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테닐 살롱의 가장 큰 접견실의 둥근 천장은 멋지게 치장되었고, 마요르카 정복을 기념하는 프레스코 그림으로 치장되어 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의 흔적도 짙다. 이 계단을 오르면 왕실이 사용하는 공간과 교회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가는 두 출입문이 나란히 붙어있다. 아라곤은 최초의 종교재판을 시작한 성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이곳 테닐 살롱 앞 계단과 광장이 그 유명한 스페인 종교재판과 심문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교회의 사제와 심문관이 등장하기도 쉬웠고, 문을 열어 나오면 바로 단상이 되었다. 계단 아래는 이단과 불신자, 그리고 피가 더러운 자들을 사탄이라 하여 불태운 곳이다. 언짢고 더러운 냄새가 가득하고 사람을 불태운 그을음 더께가 벽에 덕지덕지 붙은 곳이라 국왕 부부가 더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으므로 이 계단광장을 행사 무대로 선택했다. 단상에 이사벨라가 앉았고 그 옆에 어린 왕자 후안이 앉았다. 후안은 이미 왕세자로 확정된 상태였다. 후안을 사이에 두고 페르디난드가 앉았다. 단 아래에는 새 스페인Nueva España 건설을 위해 새로운 십자군 전쟁에 나갈 벨라스케스와 오반도 같은 젊고 혈기 왕성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이달고들이 좌정했고, 빼앗은 땅에 교회를 세우고 엔코미엔다를 차지할 정복자가 될 가톨릭의 미래의 젊은 수도원장들이 이달고들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아메리카에서 가톨릭교회 사제와 이달고는 식민지 정복 십자군 전쟁에서 한 팀의 동반자로 편성되었다. 이달고들과 사제들의 눈빛이 몸에 꽂힌 창으로 성난 투우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세 번째 국왕이라 불렸던 스페인 추기경도 그 자리에 앉았다. 이 계단광장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재판의 연출자인 대심문관이 추기경을 곁에서 보좌했다. 말석이지만 이들과는 무척 낯선 경력의 한 인물이 이 공간에 앉았다. 피터 마티르Peter Martyr라는 소위 인문주의 작가다.
그는 본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이슬람에 막혀 외진 곳이 된 이탈리아를 떠나 대서양 제패를 노리는 스페인에서 활동했다. 스페인 르네상스를 개척한 자라고 평가받았던 당대 지식인이다. 그가 이 엄청난 자리를 꿰찬 것은 그의 문필 활동 덕이었다. 그는 작가답게 새로운 땅을 ‘발견’해 낸 콜럼버스의 업적을 위대한 레전드 스토리로 포장해 주었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던 때였다. 그가 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수수께끼 같은 새 땅에 대한 궁금증을 그의 과장된 글이 풀어주었고, 허구적인 이미지를 허풍으로 구체화해 주었다. 그의 펜이 신대륙에 대한 환상을 높여주었고, 그럴수록 콜럼버스를 신의 반열로 올려주었다. 국왕 부부는 스페인의 신대륙 독점권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이 인문주의 문장가의 역할을 절실히 필요했다. 국왕이 마티르를 홍보 전문가로 기용한 것이다. 그가 종교재판에 심취한 아라곤 추기경의 요청으로 콜럼버스의 편지를 참고하고, 콜럼버스를 비롯한 여러 ‘발견자’들을 인터뷰했고, 궁정에 보고된 보고서를 읽고,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저작물의 장르를 따진다면 팩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공상 탐험 홍보물로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준 공로로 그는 자메이카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카리브든 아메리카 대륙이든 한 번도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그 책이 <신세계 시대>(1511) 다. 이 책은 콜럼버스의 카리브해 항해와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 그때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한 유럽인의 초기 접촉에 관해 적었다. 황당한 내용을 듬뿍 담고 있을지라도 이 책은 유럽인들의 신세계에 관한 최초의 인문 지리 정보서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사 연구에서도 큰 가치가 있는 책이다. 마티르가 ‘신세계’라는 콘셉트 워드를 처음 짜냈고, 이 책의 제목으로 달아 널리 유행시켰다. 기독교 순교자라는 이름의 저자 마티르는 순교하는 대신 새로운 기독교 왕국 건설을 위해 신세계를 과감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묘사했다. 그의 책에는 ‘미지의 땅’, ‘발견’, ‘놀라움’, ‘문명화된’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이 책은 사실과 허구를 잘 버무렸다. 콜럼버스의 1차 항해 때 3척의 소형범선에 탄 선원은 89명이었다. 그러나 마티르는 220명이라고 기술했다. 선원 220명이 세 척의 배에 나눠 타더라도 그 배의 크기는 엄청난 크기여야 했다. 그러니까 세 척의 배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선원의 수를 허풍으로 버무리는 식이었다. 자신을 궁정 작가로 후원해 주는 스페인 왕실의 위세를 위해 단순한 사실마저도 지나치게 과장했다. 고용주를 위해 작가로서 할 바를 다해 순교한 셈이다. 콜럼버스의 스페인 군인 1명이 벌거벗은 원주민 400명을 단 하루에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주민을 ‘그레이하운드에 쫓겨 숲으로 도망치는 멍청한 토끼처럼’으로 표현했다. 콜럼버스는 배가 침몰해 다이노의 도움으로 모래밭 집을 세웠다고 항해일지에 기록했지만, 마티르는 다이노에게 도움받은 일은 인용하지 않고 원주민을 정복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왔다는 것만 담았다. 나체의 여자를 잘 먹여 보냈더니 마을에 돌아가 기독교인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콜럼버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마티르는 콜럼버스가 그랬듯이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을 ‘인도Indies’라고 특정했다. 콜럼버스는 1차 항해 때 자신이 지팡구와 한반도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항해에서 돌아와서는 생각을 바꿔 중국과 연결된 인도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 콜럼버스의 생각을 충실히 홍보에 반영했다. 쿠바 앞바다 바하마 제도의 섬들을 중세 유럽의 전설 속 신비한 땅 앤틸리스Antilles라고 문서로 특정한 작가가 마티르다. 그때부터 카리브와 앤틸리스, 아메리카는 인도가 되었다. 피터 마티르는 순교자 베드로라는 이름이다. 그도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사제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시대를 상징한 작가 마티르는 하드코어 엽기 잔혹극 장르를 창작해 냈다. “그들은 성인을 사로잡으면 죽여서 여러 부위로 토막을 냈다. 내장과 성기, 코, 귀 같은 끄트머리 살은 신선할 때 나눠 먹는 잔치를 벌였고, 팔다리는 소금에 절였다. 마치 우리가 나중에 먹으려고 햄으로 만들어두는 일과 비슷했다. 그들은 여자를 먹는 것은 금지했다. 그들은 어린 여자를 잡으면 가두고 먹였다. 마치 우리가 암탉이나 암양, 씨암소는 새끼를 낳으라고 가두어 먹이는 것과 같다.” 사람의 귀와 손, 발을 자르는 형벌은 스페인의 여러 형량 체계 가운데 가장 가볍고 흔한 처벌이었다. 정작 스페인 사람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다이노들이 하는 일이라며 야만이라 야유했다. “신세계”에 대한 이 자극적인 야만인 이미지는 신분 상승 욕구에 불붙은 유럽인들의 마음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가 되었다. 이런 야만인들은 십자군을 보내 모두 정복하고, 몰살하거나, 노예로 삼아야 마땅했다. 그의 책은 종교재판의 검열을 통과했고, 스페인 국왕의 허락을 받아 왕에게 낼 세금 인지를 붙여 출판 판매했다. 그는 스페인 사람들이 부엌에서 닭이나 돼지를 잡아 요리할 때처럼 카리브 야만인들이 어린아이를 잡아 요리해서 먹는다고 적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와 다른 기록에도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마티르는 직접 신세계에 가본 적도 없었다. 콜럼버스의 과장을 바탕 삼아 인문주의 작가 마티르가 거짓과 허풍을 덧붙였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 아니다. 받아들여진 대로가 진실일 뿐이다. 괴담은 진실이 되었다. 카리브 사람들은 위험하고 야만적이며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마티르는 이 책에서 카리브에 사는 다이노를 마리head로 표기했다. 마티르뿐 아니라 단상에 함께 앉은 스페인 국왕 부부와 추기경, 이달고와 사제들에게 이런 짐승들은 노예 삼아 마땅한 것들이었다. 구가나가리 가시관과 다이노의 인정스럽고 친절한 태도가 피터 마티르의 책에서는 전혀 다르게 투영되었다. 다이노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순종적인 종들이 되었고, 야만과 미개, 사탄의 악이 되었다. 마티르가 마음껏 상상한 신세계에는 노예로 삼아 마땅한 인간의 몸통을 한 개, 돼지들이 널려 있었고, 마음껏 강간해도 좋을 여자들이 옷을 벗고 들판 가득 나돌아 다녔다. 심지어 그 여자들은 처음에는 반항하다 조금 있으면 창녀처럼 적극적으로 성행위를 한다고도 했다. 중세의 화가들은 그리스 신화 속 여신과 기독교 성경 속 신화를 그린다며 사람의 나체를 많이 그렸다. 르네상스의 성화 속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풍만한 젖가슴과 다리를 살짝 모은 완벽한 육신을 보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성인의 육체는 완벽하게 조화된 매력적인 인간의 몸이었다. 육체는 죄의 그릇이라고 경계하여도 완전하고 무결한 신의 육체는 올려다보는 자들에게는 육감을 자극하는 누드화였고 포르노그래피였다. 그런 마당에 벌거벗은 여인이 넘치고 여자들은 강간을 좋아한다는 문장은 유럽인들의 본능 욕구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곳에서는 본능과 성욕을 억제하지 않아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 터였다. 마티르의 <신세계 시대>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마음껏 빼앗고 죽여도 좋을 대상이라는 인식을 조성하는 데 탄탄한 밑자락을 깔았다.
1493년부터 쓰인 이 책은 코르테스의 멕시코 침략까지 약 30년 세월 동안에 이루어진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동방견문록>과 같이 팩트와 픽션이 뒤범벅된 판타지 어드벤처 장르의 출판물이기도 했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길수록 책이 많이 팔렸다. 이 책이 파리, 바젤, 런던 등에서 16세기에 광범위하게 출판되었다. 마티르의 이 책으로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런던에서는 1612년에 출판되었다. 그리고 8년 뒤인 1620년 영국의 성공회 분리주의자들이 북아메리카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필그림Pilgrim이라는 기독교 순례자들도 이 책에 크게 영향받았다. 필그림들이 순례를 시작했다. 매사추세츠 기독교도들의 순례는 스페인 가톨릭교도의 순례와 똑 닮았다. 인디언을 죽이고 쫓아내고 노예 삼는 착취의 순례였다. 상대방은 옥수수와 도토리묵을 나누어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게 해 준 원주민들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순례자들은 그들의 신에게 추수의 감사 예배를 올렸다. 마티르는 1526년에 죽을 때까지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의 곁에서 식민지 정책을 자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