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92. 개선

by 조이진

개선

1493년 3월 16일 팔로스항구. 흑백의 철십자 크로스 파테cross pattée가 수평선 너머에서 보였다. 콜럼버스가 돌아왔다. 이때 스페인 국왕 부부는 바르셀로나에 머물고 있었다. 국왕 부부가 ‘인도’를 발견해 낸 콜럼버스가 팔로스에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다급하게 콜럼버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콜럼버스에게 세비야로 들어오라는 연락 문서에는 이제 선연하게 “돈Don”이라는 스페인 최고 귀족의 작위가 새겨있었다. 돈 크리스토발 콜론Don Cristobál Colón이자 대서양 제독이자 새로 발견한 땅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부왕viceroy이자 총독이라는 공식 직함도 근엄하게 적혔다. 이 긴 직함이 문서 수신자의 급변한 지위와 위상을 입증했다. “아주 일찍 서둘러 돌아오시오. 모든 준비를 마쳐 놓겠소. 올여름에 다시 항해를 준비해 곧장 다시 그 땅으로 항해하시오.” 스페인은 스페인이 인도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유럽 여러 곳에 적극적으로 퍼트렸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었고, 여론전에서 승리해야 교황에게 새로운 땅에 대한 독점권리를 판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콜럼버스도 마찬가지였다. 팔로스에 도착한 즉시 자신의 항해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유럽의 여러 유력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시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오랜 소망을 달성한 자신의 영웅담을 알리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새로 발견한 땅은 자신이 소유할 땅임을 미리 확실하게 다져두기 위한 홍보전의 일환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포르투갈에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는 이 섬에서 겪은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곳 왕과 우호적인 관계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를 형제라고 부르게 된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여겼으며 실제로 나를 무척 공손하게 모셨습니다. 그는 무기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도 없고 나체로 벗고 다니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놈들일 뿐입니다. 내가 남겨두고 온 스페인 선원들 몇으로도 그 모든 땅을 지배하고 짓부술 수 있습니다. 선원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 땅은 스페인 전체의 영토보다 넓습니다. 그 땅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땅 중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이라 내가 모두 차지해 두었고, 그것마다 스페인 국왕 폐하 두 분의 이름을 딴 섬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제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은 모두 없애고 완전히 카스티야 왕국의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금광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 큰 스페인 도시를 만들어두었고, 그 도시는 중국 황제가 있는 본토에 붙어있는 땅이므로 중국 황제와 큰 이문이 남는 거래를 많이 하는 거점이 될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자기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과장과 떠벌리기를 일삼았다. 그가 말하고 있는 히스파니올라섬이 스페인 전체 영토보다 크다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포르투갈은 땅을 칠 노릇이었다. 포르투갈은 이미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많은 항해 역량과 식민지 정복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차지하기는 속도가 결정할 일이었다. 그리고 심판을 볼 교황의 입장이 중요했다.

세비야 대성당 꼭대기의 종탑과 히랄다


1493년 4월. 발코니에서 뿌려대는 꽃잎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눈처럼 가득 쏟아지고 흩날렸다. 세비야 성당의 첨탑에는 아직 종루와 풍향계 히랄다Giralda의 종이 얹히지 않았다. 이 성당은 본디 12세기 알모하드 왕조가 세운 모스크 사원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그 탑은 기독교식 이름인 히랄다로 불리지 않고, 모슬렘 말인 미나렛minaret으로 불렸다. 그 탑을 오르는 길은 계단이 없다. 모슬렘들은 하루 다섯 번씩 말을 타고 마나렛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 탑 꼭대기에서 예배가 시작됨을 목소리로 외치던 탑이다. 세비야에 콜럼버스가 도착했다. 1492년 8월 3일에 출항한 지 8개월 만이었다. 미나렛을 정복한 기독교인들은 그 탑에서 꽃잎들을 쏟았다. 꽃잎이 스페인과 로마가톨릭의 새 예루살렘과 천년왕국, ‘대항해’ 시대를 선포했다. 성당의 벽면을 장식한 축하 배너들은 바람을 받아 배부른 돛처럼 부풀어 터질 듯했다. 퍼레이드가 지나는 길마다 콜럼버스에 대한 찬사와 칭송이 가득했다.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에서 쉼 없이 미사가 열렸고, 사람이 꽉 찼고, 종말을 외치는 자들로 세비야 성당은 뜨거워졌다. 이제 곧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스페인이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재림 그리스도 후안 왕자가 새 천년왕국을 지배한다는 사제들의 예언은 이제 곧 사실로 입증될 것이었다.


그의 명성은 이미 유럽 전역에 퍼졌다. 스페인 왕실은 각국 대사들을 초대했다. 군중들이 세비야 대성당 앞 광장에 몰려들었다. 시체를 태우는 종교재판 화형식의 어두운 연기가 가득한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이제 펼쳐질 참이었다. 다이노들을 맨 앞에 배치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이제껏 스페인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온갖 이국적이며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이 세비야 거리에 나타났다. 스페인 사람들의 눈이 번쩍였다. 처음 본 그 색들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쓰고 있는 탈 가면은 또 무엇인가? 여러 새 깃털과 물고기 뼈,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탈은 그 자체로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달처럼 동그랗게 생긴 작고 동그란 항아리를 몸에 달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그 항아리 속에 그들의 영혼이 살고 있다는 말로 수군댔다. 콜럼버스는 팔로스항에 돌아올 때 원주민 6명을 잡아 왔다. 이들 다이노들이 지금 높은 수레에 태워져 세비야 광장의 거리 행렬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구가나가리 가시관은 나비다드를 떠나는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는데, 먼 길을 떠날 우리의 고생길을 염려했고, 특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자들을 유난히도 측은히 여겼다”라고 기록했다. 구가나가리는 10명의 원주민을 뽑아서 콜럼버스와 함께 스페인에 가도록 했다. 콜럼버스의 기록에 의하면 구가나가리는 이들 원주민을 콜럼버스의 배에 태우면서 스페인에 가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오라고 했다고 했다. 콜럼버스는 다른 여러 섬에서도 원주민을 기념품처럼 태웠다. 어린아이까지도 잡아 태웠다. 하지만 긴 항해와 배고픔에 살아남은 자들은 겨우 여섯. 그들이 지금 세비야에서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했음을 입증하는 기념품이 되어 구경거리가 되었다. 카리브의 앵무새는 햇빛을 받은 각도에 따라 수시로 노랗고, 빨갛고, 초록이자 파란색들로 바뀌며 반짝였다. 카리브 앵무새의 깃털 색깔을 비춘 해는 이제껏 스페인의 교회를 비춘 해와는 다른 해였다. 앵무새에게도 많은 군중과 함성을 비추는 스페인의 해는 카리브의 바다와 숲을 비추는 해와는 무척 달랐다. 앵무새는 깍깍대며 놀라 퍼덕거렸다. 카리브해에서 앵무새를 다이노들은 막까오macaw라고 불렀다. 다이노들은 알을 깨고 나올 때부터 막까오들을 키웠다. 그렇게 길든 막까오들은 주인의 어깨를 떠나지 않았다. 다이노 어깨에 발톱을 걸고 앉은 앵무새들은 카리브에서보다 더 크게 깍깍댔다. 이미 불길함을 예감한 듯 날갯짓도 불안하고 수선스러웠다. 아프리카인들처럼 쇠사슬에 발이 묶인 카리브 사람의 두려움은 더했다. 처음 묶인 발목의 쇠사슬의 묵직함에 마음이 심란했다. 관중들은 이 낯선 존재들에게 느끼는 이질감만으로도 환호했다.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카리브 사람이 몸에 차고 있는 금장식품들이었다. 카리브 사람들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주 다른 새로운 종류의 ‘상품’이었다. 순회 서커스단이 데리고 다니는 신기한 동물과 다름없었다. 허풍과 과장, 상상이 가득한 <동방견문록>과 <맨더빌 경의 모험> 같은 작품이 입에서 입으로 유행했던 시절이었다. 판타지 모험 소설 속의 캐릭터 중에는 머리가 두 개 달린 인간도 있고, 켄타우로스나 인어공주처럼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물고기인 괴생명체도 있었다. 그러므로 세비야 사람들은 정말로 카리브 사람들의 머리가 몇 개인지, 꼬리는 몇 개로 갈라져 붙어있는지, 듣던 대로 뱀 껍질의 다리인지, 성기는 어찌 생겼는지 그런 것을 확인하러 전시장에 몰려들었다. 날개 퍼덕이던 앵무새는 더 날카롭게 깍깍댔다.

Glaucous_Macaw.jpg 쿠바의 새들. 다이노들은 씨족마다 색깔이 다른 새 깃털을 꽂아 씨족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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