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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Feb 04. 2017

나를 이해하는 남편을 만날 것?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

"처음으로 머리 손질하는 거였는데 그걸 못 봤어…. (엉엉 운다)"


영화 속 고군분투는 잊은 듯 밝게 웃는 '캐리 언니'의 미소와 요 근래 부쩍 관심이 생긴 '사내에서의 여성 인권' 관련 이슈라는 점에 팍팍 끌려 영화를 재생했다. 영화를 본 후 2주 정도 흐른 지금에야 적어보는 생각은 "내 꿈과 일을 이해하는 남편을 만났다니. 이 언니 정말 부럽다" 정도다. 


이 언니에게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머리에 이가 생기고 빗질도 못하고 옷도 후줄그레 하고. 그래도 자기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고 매 순간 아이들을 챙기며 남편에게도 사랑으로 대하는 등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이름에 충실할 뿐이다. 지금 한국에선 이런 언니들이 죽음까지 불사하며 사회 문제가 된 후에야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인데, 사실 필요한 건 이 언니의 '남편'이 아닐까 싶다.


나를 이해하는 남편. 그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 부럽다. 근사한 직장을 가지지 않고, 엄청난 재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 살림에 씨름하는 언니들이 부딪치는 이슈들에서 침묵하는 남편들만 없더라도 이런 악순환은 풀릴 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어정쩡한 해피엔딩 비슷한 결말을 맞았지만 어쨌든 이 언니의 고민 해결 절반은 그 자리에서 기다려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기다렸다는 표현도 좀 그럴까? 음. 그냥 동등하게 해 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다. 당장 얼마 전 있었던 설 연휴만 해도 그렇고, 지금 한국은 같이 일해도 가정일은 '몰빵'으로 엄마에게 가는 구조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으니까.


영화 속 캐리 언니도 다르지 않다. 유치원에선 일하는 엄마와 살림하는 엄마의 묘한 갈등이 벌어지고 유치원에서 내준 과제는 엄마의 몫인 듯 가짜 수제 파이를 출장 마치자마자 준비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아이의 말이 늦은 것도 엄마가 일을 해서고. 모든 게 당연하게 엄마의 탓으로 귀결된다. 왜지? 아이는 혼자 낳았는가? 결혼을 한 이는 둘인데 어째서 한쪽에게만 그 무게의 추가 기우느냐는 것이다. 당영한 문제제기일 텐데 이 발상이 사회에 퍼지는 것조차 참 오래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이 당연한 논의가 불편할 누군가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인이 된 초반엔 참 결혼하고 싶었다. 매번 술자리에 가서 겪는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은 이런 못볼꼴 볼 바에야 결혼하고 싶다는 극단적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제 막 비슷한 업종에서 사회인이 된 이들과 말해봐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화는 곧 푸념에 그치고 만다. 결혼을 한다면 더한 헬게이트가 열릴 거라는 걸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탓이다. 미디어에서 생소한 것처럼 자꾸만 말하는 혼밥, 혼영, 혼족…. 그들은 일부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내 친구, 선배 또 누군가의 일이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헬게이트를 열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다.


이 담론의 결론은 뻔하다.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 엄마에게만 아이 부담을 지워서 뭐 엄마가 빨리 퇴근할 수 있게 하자는 둥의 대책도 코웃음 나오는 일이다. 엄마와 아빠 모두의 일이다. 전체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한 일을 자꾸 특정 부분에 치우친 것처럼 묘사하는 일은 참 하나하나 대응하기도 힘에 부친다.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알았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모른다는 걸 말이다. 어째야 하나. 요즘 말로 '노답'이다. '운빨'로 생각이 맞는 이를 만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근래 숨쉬기도 힘들 만큼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수더분하게 일을 보아 넘기려 해도 자꾸만 들어오는 태클들에 어찌해야 할지 숨이 턱턱 막힌다. 그중에선 여자라 겪는 이슈가 태반인데 이걸 말을 해야 하나 가만히 져줘야 하나 곤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진보매체란 곳에서 개인의 사감을 타인의 기사에 반영하려는 시도도 황당하고 사감을 통보 없이 반영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조직에서 어떻게 미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구 말을 빌어 '이 땅에서 여자로 살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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