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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Feb 04. 2017

'벨에포크' 추가 입주자 안 받나요?

드라마 '청춘시대'

벨에포크(La belle époque): 좋은 시대


소녀들의 이야기는 끝났다. 진작에 끝났다. 전주 여행을 함께 갔던 친구의 추천으로 그때부터 봤던 드라마다. 드라마 정주행 역사는 파스타로 시작해 파스타로 끝날 정도로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굳이 챙겨보질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아. 가십걸 봤구나. 최근의 도깨비도 있네. 다 보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관심이 가지 않으면 챙겨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긴 호흡 탓인지 이전까진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웬걸 '청춘시대'라는 제목을 싱그러운 냄새에 미스터리 한 조미료까지 폴폴 풍기게 해 준 드라마가 바로 이 드라마다.


미디어 속 소녀들의 모습은 어땠나. 지극히 비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하며 입만 열면 연애나 쇼핑. 가볍디 가벼운 존재들. 인간으로 표현되기는 했었나 싶을 정도의 비약이 가능했던 그간의 묘사들. 재벌과 얽혀 투닥거리다 해피엔딩을 맞는 그런 멍청한 스토리에 마음을 뺏길 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 여긴다. 다른 현란한 볼거리 탓이 아니라면. 뭐 욕하면서 본다는 얘기도 있으니 자세한 사정은 내가 말할 게 아니지만 말이다.


데이트 폭력,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지독한 가정사, 모든 걸 공유할 순 없는 가족, 답답한 친구들, '나만 이런가'로 시작되는 자잘한 고민들…. 벨 에포크는 다채로운 대학생들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다뤘다. 연애란 그저 아름다운 것으로 치부되고 짝사랑 그와 이어진 후에는 꽃길만 걸을 것처럼 묘사하던 거짓말은 이제 깨졌다. 그보다는 더 현실적인 얘기들이 담론에 오른 거다. 연애 내 권력관계, 무자비한 폭력, 그로 인해 생기는 무서운 기억….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내 옆, 혹은 나 역시 겪었던 일이다.


그런 일들을 쉬쉬하면서 남의 일, 특별한 일로 가장한 미디어 때문에 그간 이들은 이상한 죄의식에 사로잡혀야 했다. 또, 대학만 가면 '논스톱' 같은 희망찬 꿀같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 거짓말을 구구절절 내놓던 이들 때문에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대학생은 "나만 이래?" 같은 회의감에 고개를 떨궜다. 누군가는 차를 끌고 대학을 가고 남의 돈으로 방을 얻어 자취생 코스프레를 하는 동안 그조차 없는 누군가는 긴 거리 통학을 그저 몸 하나 재산으로 삼아 군말 없이 다녔으며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또다른 누군가는 수업에 알바에 봉사활동에 몸이 치여 달달한 로맨스 따위는 쳐다볼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시간강사의 이상한 제안에 스스로가 더럽혀진 것 같은 착각에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거지같은 일들이고 어두운 저쪽 나라 일 같은가? 아니. 이건 현실이고 지금도 자행되며 수없이 벌어져온 일이다. 누군가의 특별한 경험만 모았다고? 아니. 별 일 아닌 거다. 여기 적은 일은 별 것도 아닐 만큼 말도 안 되는 일 같은 게 현실에선 벌어진다.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공간에서 말이다.


그 때문에 꿈을 가진 누군가는 꿈 비슷한 일이라도 하게 됐지만 그곳도 똑같은 곳이라는 생각에 몸부림친다. 그러면서 결심한다. 더 격한 신분상승이 이뤄져야 이 굴레에서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엄한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청춘시대가 더없이 값지고 빛나는 이유는 그거다. 음지에 있을 것만 같던 고민들은 양지에서 버젓이 자행돼 왔다는 것, 그 해결사는 또 남성권력으로 이상하게 그려지던 게 당연한 일로 치부돼 왔다는 것. 그걸 청춘시대는 여성 택시기사, 여성 주인, 여성 연대, 여성, 여성, 여성…. 당연한 존재의 시선을 여성에게 옮긴다. 남성 위주 드라마가 당연하게 그려왔던 것이 여성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청춘시대의 시도, 방송, 제작 모든 것들이 근사하다. 그 현장에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나는 모르나 일단 겉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시즌2 안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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