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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an 11. 2017

생각을 정리하는 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만큼 값진 일이 있을까? 그건 적당한 때가 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매순간 직관에 의존해 일어나는 일은 있어도 사람이 극한에 있을 땐 어렵다. 머리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들 그건 정리가 덜 된 날선 생각일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얼마 간의 시간이 확보돼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내 안의 여러 세포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합의를 요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건 뇌가 하는 일다.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야만 현명한 답이 도출되니까.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멍청한 말인가. 학창시절엔 더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도 그렇게 못한다. 그렇게 안 할 거다. 놀고 또 놀고 연애도 마음껏 할 테다. 지금이라도 하라고? 못한다. 지금도 못한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못한다. 때가 되지 않아서 못한다. 그 때를 기다리다가 한 살 두 살 먹었다. 스물다섯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올해부터는 좀 놀라웠다. 사실 지금도 나이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괜히 두려웠다. 아마 계속 이렇게 살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지난 2016년엔 새 회사에 들어왔고, 이별했고, 투쟁했고, 절망했고, 벽을 만났고, 취미를 가졌고, 운동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술먹고 토도 했다. 홀로 거뜬히 마시던 술을 이제는 하나도 마실 수 없다. 이전 직장에서 선배들이 정신으로 마시는 애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보다. 이젠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몸이 축났나보다.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는 마시고 있으나 예전 같지는 않다. 그렇게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보다. 그런 자리에 거절 못하고 따라다니는 막내위치라 그런가. 그게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해본다.


눈치를 본다. 막내라 눈치를 보는 걸까 아니면 조직의 특성상 눈치를 보는 걸까. 이러고 싶지 않다. 보호막이 필요하고 천정이 필요하다. 없다. 그래서 그럴까. 물가에 내몰렸지만 꾸역꾸역 뒷걸음질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강조하자면 그렇다.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지금의 나로서는 멈춰있고만 싶고 또 한편으로는 나아가고 싶다. 그러나 직관에 의해 매일을 나아가고 있어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이다.


부조리가 싫다.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도 슬프다. 세상 모르는 아이 투정 같지만 어쩔 수 없다. 거대담론에 깨끗한 척 응하고 일상이 다른 사람이 무섭다. 앞뒤가 다른 사람과는 가급적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공존하는 게 조직이고 사회다. 그래서 두렵다. 매일 보도되는 자신의 책임에 수동적으로 응한 보통의 사람들. 일부 보통의 사람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그래서 더 무섭다. 아무 생각 없이 이상한 걸 만들고 사과 한 마디 없는 보통의 사람들. 무섭다. 그래서 모두에게 생각은 필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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