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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r 02. 2017

두고두고 열어볼 영화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

"이미 지나간 일은 붙잡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 없어. 과거는 과거일뿐 뭐가 옳고 그른지 따져봤자 속만 쓰리지"


지나온 길, 사랑, 일, 꿈…. 그 모든 것을 돌아보며 처음 후회란 걸 느꼈던 근래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당혹스러운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던지 저 말이 처음으로 귀에 와 박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이 만들어내는 구질구질한 행동들, 눈물나게 짜증나는데 또 너무 그리워서 더 속상한 그런 누군가와 어떤 일들이 생각나 괴로웠다. 중간중간 쉬어가야 했다.


도입부부터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어딘가 병적으로 보일 만큼 내내 예민해 보이는 두 주인공, 그리고 시작부터 물에 풍덩 뛰어드는 여자….


"나는 네 친구로 사는 법을 모르겠다"

"그래, 내가 요즘 예민했던 건 인정."


시시콜콜한 연애 상담을 해도 우리는 안다.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시간만 안다. 위로의 시간을 떼우는 건 친구의 몫이다.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잠자코 홀로 있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힘든 얘기를 하는 건 꺼려지는 일이다. 말해서 해결될 것도 없다. 이별 후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어쨌든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는 것 같다는 게 아직까지는 내 생각이다.


영화 속 대사들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아파서 눈물나서 보기가 힘들다. 요즘 자꾸 소리내어 울고 싶은데 라라랜드 때도 꾹꾹 참았던 눈물이 그 끝을 보는 것 같은 신랄한 이 영화를 만나 터질 것 같아서 그냥 꾹꾹 또 눌러 참는다.


냉정하게 보기만 하던 마음이 자꾸 나를 아프게 해서 견디기 힘들다. 나 자신도 돌보지 않고 있는 것에 더는 못 버티겠다고 마음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다.


"우리 관계 갈등을 눈녹듯이 해결할 말이 있었는데 잊었어"


종일 상대를 찾아 미행하면서도 다른 이에겐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교통사고 후에도 얘기를 해야 한다며 구급차를 기다리게 하는 행동은 확실히 '정상'의 범주는 아니지만 그 '맥락'을 보면 사랑의 미친짓 정도로 이해함직하다. 그리고나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나쁜 짓…. 그럼 그걸 이해해야 할까? 아니. 도덕적으로 나쁜 건 나쁜 게 맞다. 보는 내내 불편했던 건 그 이유였겠지.


"우린 널 도울 방법을 모르잖니"

"저도 모르겠어요"

"뭔가 잘못된 것처럼 날 대하지 말아주세요"


상대는 이렇게나 아픈데 종횡무진 이상한(혹은 그래보이는) 행동을 하고 다니는 남자 때문에 대리 스트레스를 받았다. 너무 사랑해서 미친 짓을 하는가보구나…. 정도로 이해하려 했던 행동들은 외도씬이 나오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됐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미친듯이 전 여자친구, 혹은 부인을 그리워한다면서 왜 그런 짓은 자제가 안 되는 거지? 그런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진정 사랑하는구나~'하고 수용만 할 수 있을까. 뭐,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런 모습을 담은 거라고 누군가 설명한다면, 나는 아직 그런 세계는 잘 모르나보다. 그리고 영원히 모르고 싶고. 그런 행동이 재결합시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면 더더욱 스트레스일뿐이고 영화 속에서나 이해 가능한 행동이겠지 싶다. 큰그림에는 별 거 아니려나. 모르겠다.


"이런 일에는 정확한 처방전이 없어"


너무 아파서 답을 구하려 해봐도 그냥 그렇다. 그런 거다. 별 수 없는 거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다. 시간이 진실을 모두 알려주거나 하진 않지만 그냥 그랬던 일 정도로 치부할 힘은 준다.


생각하면 너무 꿈같아서 내게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싶은 과거가 있다. 밝았고 빛났으며 불안하지만 꿈, 그리고 설레는 만남을 갖던 시간들. 매번 불안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사랑으로 빛난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너무 아득해서 신기할 지경이다. 이제 와서 달고 달았던 시간을 아무리 기억해도 소용없다. 다시 만날까 말까 망설이며 가슴 졸이던 시간들도 이제 무의미하다. 그것들을 굳이 회상하며 잠 못 이룬대도 다 겪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그냥 지나야 할 시간일 뿐이다. 


보는 내내 현실 탓에 고통스러웠지만 영화 자체엔 필요할 때마다 열어보고싶을 만큼 명대사, 인간의 미묘한 심리 묘사 등이 가득하다. 가까이 하고싶지만 너무나 가까워서 상처조차 부담이 될까 어쩔줄 몰라 멀어져버린 사이. 시간은 그 빡빡한 좁은 거리에 적당한 기시감을 주었다. 아름답고 현실적인 결말 덕에 숨통이 트인 기분이랄까. 다시 곱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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