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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r 24. 2017

길에서 펑펑 울고싶을 때

그냥 펑펑 울고 싶다 요샌. 하나같이 너무하고 하나같이 배신감이 든다. 캐나다 간 친구는 "인생은 원래 혼자야. 제창하자"라고 강하게 마음먹게 도와줬다. 나는 혼자다. 세상에 진짜 친구란 게 있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오해하고 제멋대로 결정해버리는 아이와 그 아이가 생일을 축하해줬다는 이유로 갑자기 척을 지는 아이. 초등학생인가?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나는 내 곁에 있느 사람들을 돌볼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그래서. 돌봄의 결과는 무엇이었어요?


그 돌봄의 결과가 같은 돌봄이었나요? 사랑을 베풀었을 때, 애인은 똑같이 사랑해주던가요? 친구는 같은 우정을 수년간 여전히 베풀어주던가요? 나는 그냥 무너지고 말 것 같다. 모든 게 허무하고 의미없다. 마음에 응어리진 게 뜨거워서 견딜 수 없어도 견뎌야 한다. 오늘, 내일, 모레를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다들 이렇게 사니? 라고 묻고 싶지만 그것도 의미없는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증발하고 싶다" 그야말로 그렇다. 그러나 꼭 그렇게 나쁘기만 하니?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잘 모르겠다".


힘든 일에 힘든 일에 힘든 일만 생겨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마음 속 깊이 서로를 향한 오해가 자리잡고, 그 오해는 아무리 대화를 해도 해소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거나 상대를 잃은 후에야 알까? 그것도 아닐걸. 나는 그냥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는 것에 좀 더 정진해보려 한다. 너무 많은 걸 느끼지도 말고 너무 애정을 주지도 말고 너무 우정을 나누지도 말자고 나를 다시 한 번 다잡게 된다. 너무 슬프다. 왜 내 삶의 모습은 이럴까? 라고 물어봤자 소용없다. 다들 그럴 테니까.


다들 그런데 다들 앓고 있는 이 병은 왜 해결되지 않는 건가요? 라고 묻고 싶다. 나는 진심과 사력을 다해 상대를 노크했지만 상대는 그 진심을 사뿐히 무시해버릴 때. 그걸 묻고 싶다. 그 권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상대의 진심을 왜 그리 가뿐하게 버리나요? 그게 그래도 될 만한 무게인가요? 아. 나는 그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가요? 물어도 대답을 줄 사람은 없다. 내 마음이 답을 알까? 점점 더 어지럽고 불명확해지는 이 길에서, 달라진 환경에서, 달라진 과거르 붙잡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일까요? 나는 궁금하다.


아프고 답답해서 그냥 펑펑 울고 싶다. 때론 누군가의 가면에도 속아 그냥 울고 싶어지는 일이 늘어났다. 나는 당신의 가면을 알고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데도 그냥 울고 싶다. 어디든 마음 둘 곳이 한 곳도 없다. 누구나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고 사는 걸까요? 나는 나이드는게 좋았는데 이젠 무섭다. 나는 가진 것도 없는데 잃어햐 한다니 세상에. 잔인한 것들은 왜 자기가 잔인한지 모르나요? 그래서 잔인한 걸까요. 나는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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