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했던 콘텐트'가 일으킨 '작은 소동'
비싼 공연을 내 돈 주고 보기는 처음이다. 브런치 구독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라라랜드'의 팬이다. 손꼽아 기다린 지난 콘서트는 회식 탓에 예매에 실패했다. 이직 후 생각 많던 밤에 발견한 추가 공연 소식은 단비 같았다. 예매 후 사느라 바빠 잊었다가 어제 알고는 설렜다. 먼 거리지만 꾸역꾸역 간 건 '라라랜드'가 그만큼 좋기 때문이었다. 1층을 택했고 같은 여운을 느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옆사람의 땀냄새 탓에 머리가 아플 정도라 코를 막아야 했다. 우스웠다. 이게 무슨 꼴이람. 거금 들여 좋은 공연 보러 왔는데 자리 운이 나쁘다니. 가던 길에 괴상한 할아버지가 등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나빴던 기분에 냄새까지 더해 시큼해져버렸다. 그런대로 공연에 집중하려 코를 막거나 숨을 참는 등 작은 소동을 지나치며 화면과 오케스트라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좋았다. 피아노의 틀린 소리도 트럼펫의 오류도 그냥 내겐 "급하게 준비했구나", "어렵나보다" 정도로 다가왔다. 그냥 라라랜드라는 콘텐트가 팬들을 위하 다른 형식으로 다가왔다는 것 자체로 기뻤다. 나는 라라랜드를 영화관에서 여러 번 볼 정도의 팬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이번에 나를 괴롭힌 건 세바스찬이었다. 연인의 실패담 혹은 그랬다면에 대한 아련함 정도로 읽히던 영화는 내게 잃어버린 꿈과 그 후를 견디는 자들의 모습 정도로 다가왔다. 그 과정을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읽혔다. 꿈을 잃은 자와 그걸 "왜 잃느냐"고 닦달하는 미아로 보여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둘 다 이해됐다. 당장 리허설을 앞뒀는데 다른 곳으로 가서 하면 왜 안 되느냐니. "짐이 다 여기 있고" 따위의 당연하지만 위태위태한 대화를 보면서 생각나는 장면들에 머리가 아팠다.
꿈과 현실의 가운데에서 타협한 걸까. 타협처럼 보이지만 크겐 다시 꿈으로 가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무탈하게 꿈만 꾸면서 의지를 갖고 따라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겠지. 흘러가는 대로 가던 두 사람의 결말은 어땠나.
요 근래 잠을 잘 못 잔다. 선잠이 든 후에도 일어나면 지난밤 꾸었던 꿈들이 생생하다. 어지러울 정도로 말이다. 라라랜드라는 콘텐트를 적합한 시장인 한국에 보이기 위해 현실과 타협했을 테다. 그 와중에 연습 부족 혹은 실력 미달도 있었겠지. 그것과 별개로 영화는 여전히 멋졌다. 때에 따라 달리 읽히는 화면도 좋고 그 분야 일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게 만드는 설렘과 긴장도 행복하다.
지휘자의 모습을 보면서 팀을 끌어가는 것에 대해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오늘 공연은 그러니까, 내가 쉬려고 내게 준 선물은 아니었지. 내가 버틸 수 있게 뭐라도 던져준 것이었지만 아니었지. 여러 과제만을 상기시킨 그런 공연이었던 셈이다. 고통스럽진 않다. 그냥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뿐이다.
사족이지만 당신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며 보기도 했다. 자기 꿈과 취향을 옹골차게 밀고가던 세바스찬은 '이제'서야 당신을 떠올리게 한다. 재즈를 좋아한 어떤 이. 옆사람이 당신이라면 어떨까. 불이 켜졌을 때 당신일 수도 있겠다. 우연히 마주치는 거구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다. 이 작은 소동이 지나면 또 어딘가에 도달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