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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Oct 05. 2017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영화 '동주'

연휴, 왓챠앱을 떠돌다 늘 그리던 영화 하나를 발견했다. '동주'. 이게 왜 그리 보고 싶었던지. 상영관, 시간대도 한창 오전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이제야 본다. 동주. 동주. 동주.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 하나가 가슴에 와서 콕 박힌다. 


아뇨. 그래도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똥글을 써대는 것도 그렇지 못하고서는 감상을 주체할 수 없는 것도 전부 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일이다. 열망에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결국은 글을 쓰고 싶을 뿐이라고 내 안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것도 모두 다 어디 꺼내기엔 부끄럽다. 그저 홀로 품고 알고만 있거나 해도 참 좋은 시절이니 더 부끄럽다.


이런 배부른 고민 따위 허용되지 않던 그 시절. 이런 똥글(그 분께서 남기신 글은 똥글이 아니다)을 써대다가 재수없이 얽히면 하나하나 의미가 부여돼 나도 모르는 내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재수없는 시절. (그 시절이 완전히 갔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총칼을 들기보다 펜을 들고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탓해야 했을 시절. 그 모든 걸 합리화할 수 없어 더 고통스럽고 부끄러웠을 그 시절. 


철없던 시절 내공 없이 글이 술술 써진다는 건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깜짝 놀라울 만한 일이지만 한 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니까. 그 시대에 그만한 여유와 배경을 가지고서 그만한 일(그 분의 기준) 외엔 해내지 못하던 것도 부끄러웠을지 모른다. '부끄러움', '사람이 된다'는 말. 그런 터무니없을지 모를 말들에 콕콕 박혀 감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내 말 하나하나를 검열하는 것은 세상엔 남의 말을 이리저리 왜곡하여 터무니없는 오해들이 생겨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요상한 마음'은 누군가의 속엔 스멀스멀 숨어있을 뿐 언제고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섭다. 자신의 죄악을 합리화하기 위해 절차 따위의 핑계를 내는 사람도 무섭다.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세상도 무섭다. 


주먹구구의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의 부끄러움을 알았던 분을 만나니 참 좋았다. 나는 그 분이 짊어졌어야 할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모든 게 넘쳐나는 이 시절엔 이런 감성은 '오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또 부끄럽다. 영화 속 윤동주보단 시인 윤동주가, 영화 속 동주보단 몽규가, 나는 더 좋았다. 실패했지만 제 안에서 큰그림을 그려대던 그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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