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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an 02. 2018

'적당한' 어른이 되는 '카모메 식당'

내공이 있어야 '아무 것도 아닌' 걸 '아무 것도 아니게' 해낼 수 있어

"주먹밥은 마음의 고향 같은 거죠"
"사실 방금 지어낸 얘기지만요"


수영을 하고 무릎걸음을 걷는다. 그릇을 닦고 물을 따른다. 어서오라는 인사를 하고 창 건너 낯선 이에게 미소를 건넨다. 모르는 이를 집으로 초대하고 함께 일한다. 오가는 대화에 세련된 거짓말로 상황을 부드럽게 풀 줄 안다. 눈물 흘리는 상대에게 애써 이유를 묻기보다 휴지를 건넨다.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장면들은 별 거 없다. 마음을 후려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별 거 없어 보이지만 별 거라는 걸 조용히 그린다. 저런 행동들은 아무에게서나 기대할 수없다. 세련되고 착한 사람들만 모인 카모메 식당은 그래서 아름다워 보이지만 어쩌면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저마다 이유 있는 '여유' 형태를 가진 사람이 모여서 가능하다.


어딜 가나 사연은 있다는 말은 이젠 식상할 수 있다. 어딜 가든 마찬가지라는 말과 통할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안다. 환경과 사람에 따라 그 식상함의 질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버텨낼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참아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도 있다. 주인공이 지어냈거나 혹은 지어냈다고 거짓말했거나. '연어라는 공통점이 크게 일본과 핀란드를 묶은 것'(사치에식 아무말)처럼 세상은 지금의 점이 어디로 퍼져나갈지 짐작하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근래의 나는 나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확정했다.


부조리 따위를 목도하는 성격이 못된다. 괴롭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걸 보고도 모른 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카모메 식당이 아름다운 건 '그게 아니'라는 위안을, 거짓이라도 해준다는 점에서다. 사치에가 새 메뉴를 준비하고도 '주먹밥 정체성'을 간직한 건 별 거 아니더라도 멋지다. 이유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새 친구 둘을 만난 일도 기적이다. 사치에가 핀란드에서 가게를 열고 하루하루 버텼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오늘이 모여 미래를 만드는 건 식상한 클리셰일지 모르지만 이건 확실하다. 그가 텅 빈 식당에서 낯선 이를 향해 (아마도 힘을 내어) 건넸을 미소가 그의 결과를 이뤄냈다는 것 말이다.


저마다 일본에 사연 하나씩을 남겨두고 핀란드로 떠난 건 이유가 있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 세상이 끝나기 전 만나기로 한 약속도 거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인생의 어느 순간에 그런 대화를 기꺼운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남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순간에 진심이던 사치에의 마음이 좋다. 야무지거나 혹은 얄밉다고 혹자는 칭하더라도 그의 거짓말과 포용력이 좋다. 두 친구는 여전히 사치에 곁에 남아있을 것만 같아. 떠나도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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