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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16. 2017

어떤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

"싫으면 1인 미디어 해야지 뭐"


일에 의지하고 일로 스트레스를 종종 푸는 탓에 벽에 부딪힐 때면 달리 돌아갈 때가 없다. 난 일하는 게 재밌는데 그걸 악용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에 사로잡히곤 한다. 약한 정도의 혐오도 밀려온다. 그래도 과거를 곱씹으며 그 때보단 나은 것도 있으니 괜찮아 따위의 위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얻은 것과 잃는 것을 꼼꼼하게 확인하는데 그 때마다 긍정과 감사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된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또 할 수 없는 게 있는 게 조직이고 사회겠지. 그게 싫으면 1인 미디어를 해야하는 거다. 그게 싫음 적응해야 하는 거다. 그렇다. 새롭게 안 사실은,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일을 꽤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냥 뭔가 오그라든다. 그래 그거다. 뭐 다른 이유는 없다. 아직 굳은살이 덜 배겨서 그런 걸까.


진보매체에 학을 뗐던 그 사건 이후로 그쪽 뉴스와 기사는 읽고 싶지도 않다. 대안물인 모 종편 뉴스가 아니면 욕지기가 나와서 뉴스를 보고듣는 일이 괴롭다. 휴식 시간엔 말이다. 누군가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가 만난 게 조직이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데 그건 참 아름다운 조직에 있을 때야 속하는 말이고. 아름답다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애티튜드에 한한다. 속은 들여다볼 수도 없고 짐작 가도 확인할 수 없으니. 알고 싶지도 않으니.


지금 조직에 와서야 그 말에 동의한다. 도덕적 개인을 만나본 일이 없을진데, 그나마 여기엔 그런 체라도 하는 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한 대형 방송사의 인턴을 하던 시절,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던 무시무시한 카르텔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잘 먹고 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가는 건 왜 대우받지 못하던 이들이었는지. 그 땐 그게 너무 분했다. 뭐 티를 낸 건 아닌데 그냥 돌아보니 그랬단 말이다.


그들과 다른 처지에 있는 지금 그리고 취직 후 계속. 같은 곳에 속한 이들의 역겨움에 욕지기가 나와 미칠 노릇이던 시절을 지난 지금의 나. 견습 시절 겪었던 일부터 죽 톺아보면 세상에 몸이 이렇게나 망가진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조금만 힘내자. 그냥 시간을 보내는 법, 견디는 법, 기다리는 법도 필요한 셈이다. 뭐 하나 변화하려면 온 조직을 설득하고 그들이 모두 배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그게 싫으면 1인 미디어 해야지.


한 켠에선 이런 궁금증도 밀려온다. 누구 좋으라고 이 고생을 하는 건데?


그럼 누군가 답해준다.


이게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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