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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18. 2017

반대를 위한 반대는 만연하다

그게 싫은 건 나쁜 게 아니다

그걸 왜 초장에 안 잘라냈어? 진즉 나왔어야지. 그걸 왜 버티고 있어? 왜 버텼냐고? 지극히 남일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고 정말 안 겪어봐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왜 버티냐고? 수년의 노력을 걸쳐 얻어낸 걸 단번에 버릴 수 있나? 폭력이 무섭지만 단번에 꿈도 쳐낼 만큼 단호할 수 있는가? 하나가 간절한 말랑한 초년생에게.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말들은 쉽다. 그리고 그 말 역시 잔인한 폭력임은 마찬가지다.


전생에 죄가 많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편하다. 얼토당토않은 공격도 과거에 대한 왜곡들도 그리고 페미니즘의 가면을 쓴 이의 말만들기도 모든 게 사람들은 제편한대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리고 믿는다. 일부 사람들에 한한다고 가정을 해야 세상이 아름답겠지만 그냥 이 사회란 이런 것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 텃세를 위한 반대, 사내정치를 위한 반대, 가부장을 위한 반대, 그 모든 것에 희생되는 나란 인간은 왜 이런 삶을 그냥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수년전 난 이미 죽었다라고 생각하고 살기로 한 적이 있다. 이미 죽었으니 이왕 사는 거 웃으면서 좋게좋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그렇게 살자. 그게 당신들이 추행하고 왜곡하고 가진 것을 빼앗아가라는 빌미는 아니다. 언제나 당한 자가 등신이다. 피해자가 등신이고 이 사회에선 왜 웃었느냐 왜 안 나왔느냐 왜 안 싸웠느냐 누가 버티라고 했느냐 다 네 선택이다 따위의 칼만 뒤에 꽂힌다. 그럼 다른 사회라면 같을까?


폭력을 견디고 나면, 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당한 자의 상처는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때로 인간들은 불행배틀이라도 하듯 상대의 불행을 확인하고 자신이 우위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며, 자신이 그렇지 않을 때는 이상한 왜곡으로 과거를 지어낸다. 기이하다. 어쩌다 이런 세상에 뒷배도 없이 들어와버렸을까, 난생 처음 후회라는 걸 한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이 불행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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