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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22. 2017

내 안의 소란

시간이 필요한 이유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자기는 강한 사람이라 다 이겨낼 거야. 자기한텐 별 거 아닌 일이거든"


내 최소한의 구역도 확보되지 못한 상태,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는 상황과 시선. 여러 가지가 겹친 상태에서 꽤 오랜시간을 보내 나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지곤 한다. 군중 속이 너무 무섭고 모르는 이가 내는 소리가 두려우며 뒤의 시선, 앞의 시선 모두 날카롭고 공포스럽기만 하다. 그러면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으면서도 두렵다. 말은 침묵보다 나을 때에야 꺼내야 한다는데 내 약한 모습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공개한다는 게 대단히 무섭다. 그러면서도 내가 나를 다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지랄맞은 일을 반복하곤 한다. 별 건 아니고 크게 소란스럽지도 않지만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큰 소란이다. 대단한 소란, 아픈 소란.


인연이 계속 닿는 선배 중 한 분께서 사주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사주 같은 건 보면 큰일난다고만 믿었는데,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될대로 되라지. 아픈 이야기들을 전부 다 꺼내놓고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끊어내고 살 수도 없는 게 인생이더라.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억울한데 이를 다 그냥 묻으라니, 가슴에 묻으라니.


그러려고 했지만 한 켠에 상처로 남아서인지 내가 나를 감당하기 힘들다. 안좋은 일을 당했다고 여기저기 떠벌릴 심산도 아니라서 그냥 안고 조용히 지내다보면 언젠가 지워질 상처겠거니 당연히 그랬는데, 근래의 나는 토할 정도로 지쳐버린 건지, 그 마음을 제때 풀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체기로 올라오는 것인지 참 좋지 않더라.


단 걸 자꾸 찾다가도 몸이 아파 그게 안 된다니 두유나 죽 따위에 의존하다가 화장품에 의존하다가 예쁜 물건에 의지하다가 책에 파묻히다가 이래저래 난리라서 그냥 가보았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담고, 그냥 가서 들어나봤다.


이런저런 설명이 꽤 잘 맞아서 신기하다가 '어쩔 수 없다, 넌 강하니 이겨낼 거다' 따위의 말을 맥락있게 들으니 세상에 그간의 설움이 그 잠시, 그리고 그 후 몇 일 동안 스르륵 녹았다. 지금도. 아,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던 거구나. 그렇게 치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한 켠에 들지만, 그렇다고 계속 내 마음에 상처로만 둘 수도 없다. 나를 위해서. 아, 어쩔 수 없었구나.


다 흘려보내자 이제. 종종 아픈 게 또 올라오겠지만 그래도 다시 버텨보자.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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