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엔 나도 모르는 감독관이
"여자가 자기 생각 시끄럽게 떠드냐 아 진짜 별로야"
모 회사에서 인턴생활 중이었다. 버즈피드 영상을 롤모델 삼아 모니터링하자는 자리였다. 관리자는 실세였다. 주변은 인턴과 신입사원 투성이었다. 이들의 방법은 당연히 동조였다. 누가 반대할 수 있으랴. 그 조용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살아남는 법은 그저 웃으며 눈웃음을 치고는 발제 시간에 섹슈얼한 소재를 톡톡 튀는 것으로 둔갑시키거나 수줍은 듯 아무 생각 없이 난처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우스운 꼴이었다. 당시 나는 매일이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나 토론이든 회의든 내 생각을 말할 때는 으레 그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했다. 그건 꽤 먹히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이용의 빌미를 주기도 했다. 그런 발언들이 내 일에 지장을 주었기에 문제라는 얘기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들에게도.
이쯤 되면 고민이 된다. 도대체 이게 여자라서인가 아니면 당시 내가 신입이어서인가? 따위의 질문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볼 때, 누구 말따라 내가 잘 웃는 긴 머리 여자라서 그런 이유도 응당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화살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논리로 이 업계를 아예 떠나야 하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뭔가?
일반화는 금물이다. 다른 매체 B 씨는 자신의 상처를 일반 남성에게 일반화해 남성혐오를 온몸으로 내뿜는 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 듣는 용어 따위를 써대며 내게도 무례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는다, 혹은 이해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것 역시 당황스러웠다. 그의 발언을 듣고 있자면 너무나 무서워서 '아아, 정말 누구 말대로 여성이 문제인가' 따위의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옳은가? 멍청한 생각이다. 이들 사례는 성별이 아닌 일부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레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옭아매는 무언의 공포와 한계를 여전히 느낀다. 이 공포의 출처는 어디인가?
나는 일하는 사람이지 여자가 아니다. 이상한 시도들이 반복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C 조직 그들에겐 대체 선이란 없는 것인가. 선이란 걸 대체 얼마나 더 그어줘야 당연한 선을 그들도 인지하는 것인가. 그 조직의 문화인가? 그 조직에선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자란 말인가? 알 수 없다. 프로필 사진에 내 사진을 올리기 싫은 이유, 어디든 프로필을 올렸다가도 다시 내려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 이유. 그건 내 겉모습이 그들 말처럼 "여자가 감히", "여자가" 따위의 말로 폄하당하는 도구로 이용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혹은 다른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 미친 자들에게 망상의 대상이 되는 것. 일하는데 방해받는 것. 이게 무슨 우려인가? 하등 쓸데없다.
더 강해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또 쓰다. 결국 나는 더 강해지는 방법밖엔 없다. 있었던 일들은 그냥 누구 말따라 forget about it이 최선이다. 바라고 또 바란다. 앞으로 100년은 더 걸릴 것 같다만 이런 고충도 나름 쓸모 있지 않은가? 적고 훌훌 털자. 털 수 없더라도 공포의 원인을 따라 올라가봤다는 의의라도 가져보자. 모 정당 대표께도 "여자가 하여간에", "여자가 돼가지고" 따위의 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 동네니까 불쌍히 여기는 게 답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