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주의
'코코'는 개봉 전 페이스북에서 바이럴되던 영상만으로 가슴 두근대게 했다.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있었다. 명랑한 목소리는(그라시아스!) 아직도 귓가를 때린다. 영화관을 가득 채운 '저승씬'은 압권이다. 현란하고 빛나는 색깔. 꽃길을 건너면 존재하는 그곳은 또다른 삶의 공간에 불과하다. 인간사가 두려워 도망치려는 사람은 마음을 고쳐먹을 법하다. 여기나 거기나 정답은 사랑이다. 픽사라 줄 수 있는 답. 그래서 뭉클하다.
기분좋은 뒤통수를 맞기 전까지 그야말로 '어른영화'가 될 뻔했다. '이래서 어른들을 위한 영화구나' '인생작 등극' 따위의 생각을 했다. 푹 빠져서 다른 생각 않았다. 누구나 꿈을 반대당한 기억이 있을 테다. 반대당한 꿈에 대한 기억은 쉽게 동일시하게 했다. 게다가 그 재능이 누군가로부터 왔다는 이유로 핍박받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도 꽃길 걸어가서 그네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애니웨이, 픽사는 역시 픽사여서 기분좋은 뒤통수로 어린이들을 위해줬다. 극명해진 선악 대비는 일부 관객에게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이 지점은 어떤 어른에겐 씁쓸할 테다. 또다른 어른에겐 생각거리를 던졌을 테고. 함께하지 않는 꿈이 무슨 소용이랴. 같은 깨달음은 어른이 되고도 아주 오랜 후에 온다. 앞만 보고 달리다 뒤를 돌았을 때의 기분이란. 내가 가장 먼저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가장 어렸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일을 시작하고 먼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 날 멈춰 고개를 드니 내 안의 작은 나를 보지 못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주변도 같이 커버렸다는 걸. 더 이상 내가 가장 어른이 아니었다는 걸. 코코는 그걸 똑똑 두드린다.
영화를 보기 전 막연했던 이름 '코코'는 이젠 부르기도 애틋할 만큼 따뜻하게 다가온다. 배신, 사기 등 어른 세상에 만연한 그네들의 더러운 이야기를 그리고도 영화 '코코'가 희망을 주는 건 결국 사후세계가 배경이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 동네. 인간사의 연장이라 거짓부렁이 언제까지는 지배할 테지만 결국 사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것. 선은 이길 수 있다는 것. 오늘날엔 헛된 희망일지라도 그렇게 살아갈 힘을 다시 주는게 결국 픽사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