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이 울린 것처럼

by 팔로 쓰는 앎Arm

워낙 전화기와 붙어살다 보니, 때론 전화가 잠잠해도 환청이 들릴 때가 있다. 진동이 온 것처럼, 분명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소리라는 생각에 피식 웃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청 같은 진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문득 삶이 진동 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에 가해졌던 타인들의 반응을 모으고 모아 내가 만들어낸 반응들. 진동이 없더라도 진동을 느꼈던 것처럼 때론 아주 가끔은 진동이 없어도 진동을 만들어내 들었을 때가 있었을 거다.


타인이 무심코 한 의미 없는 행동과 말에 상처 입기도 하고, 또 내가 무심코 한 행동과 말이 타인에게 큰 의미가 돼 다가갔던 일도 많았을 거다. 셀 수 없이. 사람은 저마다 환청 같은 진동의 기억 하나씩은 안고 있어서, 그게 우리 사이 장막이 돼 제대로 서로를 볼 수 없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란 없다. 사실 당신이 지닌 기억과 고통은 그냥 당신이 선택한 것들 중 하나일 거다. 물론 당신 행동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수 있고, 환경은 이유 없이 장애물을 가져다 주기도 했을 거다. 때론 남들은 겪지 않을 수준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소리 한 번 낼 수 없었을 때도 있다.


그 기억들이 가슴에 멍울이 돼, 펑펑 울게 되는 날이 많아질 때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사실 그 계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 이런 꿈을 가졌다. 이건 아마 그 꿈을 정당하게 꿀 수 있는 공식적인 계기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무의식이었든 의도된 것이든 당신 선택에 그 기억이 도움을 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선택에 의해 재구성된 삶이란 말이다. 의도하지 않게 흘러왔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여겼던 세월들이 지나고 나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차츰 하게 되는 시기가 왔으니까 말이다. 끔찍했던 시간들이 지나갔고, 그 시간 속에서 꿈을 찾게 됐다는 건, 결국 꿈을 찾을 계기를 무의식 중이더라도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나도 알 수 없다. 난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무한히 고통스러웠지만 희열도 느꼈다. 타인의 삶을 살아본 적 없으니, 그걸 극한의 고통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독히 고통스러웠고, 분명 그 흔적을 안고 산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저 묻어둘 뿐, 가끔씩 터져 나오는 한숨과 강박증. 그건 흉터가 분명하기에 내 선택의 결과라고 보기엔 잔인하다.


혼란스러웠다. 언젠가 일기에 '나는 그 고통을 참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말해야 했다'라고 적었다. 말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때만 해도, 인생의 기승전결을 굳게 믿었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 운명론적으로 생각했기에, 그저 말을 삼가자. 조용히 하자. 감내하자. 참자. 어쩔 수 없다. 여기고 지냈다. 그러면서, 마음에서 꿈이 자랐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내가 선택한 시간인가? 아니. 오히려 너무 순수해서, 무지해서, 인생이란 기승전결, 앞뒤가 딱딱 맞는 곳이 아니라는 걸, 내가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독히도 인간적이고 기승전결로 정리하기에는 참 치사한 부분이 많은 곳이더라. 어쩔 수 없다. 살아남아야지. 환청인지 아닌지 모를 진동이 들려도, 갸웃하게 되더라도, 다시 조용해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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