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어떤 어른'
새출발을 앞두고 설레서인가. 수면패턴이 바뀌어서인가. 걱정이 많아서인가. 결국 잠은 못 잤다. 한 시간이라 자둬야지 하는 생각은 이미 물건너갔다.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거니까 이럴 때면 그냥 새버려야지 뭐. 조명만 켜둔 방안에서 그냥 노트북을 꺼내 도닥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 결정들이 모여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킬 테지. 가능성이 열려있을 때야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라서 이게 가장 나답다. 이제 어른이 되어야겠지. 물결 타고 과거처럼 바쁘게 살겠지만 한 편으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숙제도 풀어야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이에 내 방식대로 되기로 했다. 일하는 게 좋은 나. 글쓰는 게 좋은 나. 카페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수첩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나. 모든 게 나다. 1호선 지하철은 누구나 타는 거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사람이 많은 델 가도 개의치 말자. 말로 나를 자꾸 도닥여야지 누가 해주겠어. 그리고 너무 기대하지 말자. 사람에 기대하지 말고 그냥 내 안의 중심을 지키는 데 집중하자. 일은 일이고 나는 또 나일 테니까 그걸 자연스레 흘러가듯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순간을 투사처럼 살 수는 없어.
고군분투해야 할 순간이 인생에서 많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나는 시간을 바삐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다고 믿는 축이다. 그러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여러 새출발 중 일부는 시작했고 일부는 앞으로 이뤄질 텐데 이제 그 리듬에 또 나를 맡겨보자. 다만 필수적인 건 그 와중에 내가 나를 정립할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다. 사람에 지쳐버리면 일찍 질려버릴 테니 그 어떤 것에도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 기계적으로. 누군가를 대할 때 기계적으로 대하자.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자고 나를 몰아붙이지는 말자. 그럴 필요 없다. 뭐든 해내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것도 기다리자. 가만히 있는 게 대세면 가만히 있자. 시간을 죽여야 해 고통스러운 시간이 온다면 그걸 즐기자. 이제 버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그 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잊지 말 것. 언제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나를 대할 권리 따윈 주어선 안 된다. 그래. 이건 내가 내게 하는 '아무말대잔치를 위장한 위로와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