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막내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남자 선배들 입장에서는 여자 막내가 어느날 갑자기 남자친구라고 언 놈을 딱 데려오거나 그러다 결혼이라도 한다 해버리면, 정말 기분 나빠. 그렇게 키웠는데 남 줘버리면, 기분이 좋겠어? 그래서 안 뽑는 거야. 어? 웃겨? 진짜라니까. 내 말이 맞아. 다 물어봐~ ㅇㅇ놈한테도 물어봐. 내 말이 맞지. 그게 현실이야.
#. 여기 처음 들어왔던 여자애 둘은 도망가버렸어. 그런 애들은 어딜 가도 안 될 걸? 첫 날 끝나고 술자리를 데려갔는데 거기 다른 부장들도 와 있었거든? 부장들한테 술 좀 따르고. 거기서 ㅇㅇ새끼가 바지 벗었다는 썰도 있는데 그건 당연히 사실이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니네가 마음에 든다.
#. 나는 ㅇㅇㅇㅇㅇ이 너무 싫어. 여혐 가사 썼잖아. 그런 가사 쓴 애들을 좋아하는 어린 여자애들이 많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
#. 남자들은 분명한 한계가 있어. 남자들은 어쩔 수가 없잖아.
이런저런 대화들을 듣는 막내의 입장, 후배의 입장에선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남을 까내리면서 칭찬을 듣고 싶지도 않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를 남 얘기를 듣고 한 편만 들고 싶지도 않다. 사원증을 다음날 택배로 보내버릴 정도로 학을 떼고 도망가버린 이들이었다면 분명 술자리에서 무슨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으리란 건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한 사실이다. 이들과 1년 넘게 생활한 나로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고. 몸담던 시절엔 설마설마했지만 나와 보니 더욱 확실하다. 어릴 때는 그게 멋모르고 기자 생활에 필수적인 시간들이라 생각했지만, 어쨌든 틀린 행동들을 참아주고 있었던 건 맞다는 게 좀 지난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다. 간절함에 취해서.
그렇다고 누군가를 혐오하고 특정 성별을 깎아내리는 건 더욱 싫은 이유는, 나는 이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안 그런 남자도, 여자도 있다. 그들이 겪은 일부의 문제를 한 성별 때문이라고 문제로 만든다면, 답은 똑같다. "여자라 못 써" 따위의 말을 들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밖에 더 되는가? 그럼 같이 죽는 거지, 같이 살자는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혐오를 혐오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말도 안 되는 뒤집어씌우기, 말 만들기 등을 모두 혐오한다. 피해자를 이용해 자신들의 회사 내 입지를 다지려던 이들을 혐오한다. 피해자를 앞세워 자신들의 협상의 도구로 삼으려던 가면만 노조였던 이들을 혐오한다.
그 회사의 2층에 온갖 성명이 붙었단 사실을 혐오한다.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름 뒤에 숨었던 이들을 혐오한다. 그러나 더 소름돋게 싫은 것은, 적당한 회색분자처럼 피해자의 편인 체하며 거대담론에만 나댔던 이들이다. 이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짜 피해자가 세상에 나설 수 없게 하는 원흉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자신의 피해에는 그 난리를 치면서, 눈 앞에 존재하던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다른 잣대를 들이밀던 그들이 무섭고도 무섭다. 여직원협회를 만들자던 막내에게 모든 일을 떠밀던 이들도, 그 간절함을 모른 체하다가 기사 발젯거리로만 페미니즘을 논하던 이들을 혐오한다.
어쩐 일인지. 저런 일을 모두 좀 잊고 싶어서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숨어있었는데, 옮기자마자 관련 기사를 정리해 써내야 할 일이 생기고, 그 때문에 소름돋는 이름들을 마주하고, 나아가 그들에게서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 위선에 몸서리를 친다. 강경과 위선의 간극을 눈 앞에서 보면서, 차라리 지금 거센 노동의 강도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른 생각할 수 없게 해줘서 말이다. 당신들의 강경함도, 위선도 모두 다 틀렸다. 제발 있는 것만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없을까. 그런 똥같은 기사를 쓴 당신의 흔적을 보고, 나는 또 웃었다. 아주 크게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