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Feb 10. 2018

고인 물의 썩은 개구리가 되긴 싫죠

'논술 준비하다보니 기자들이 자기 주장 센 이유를 알았다'는 얘기를 아는 동생에게 들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키득대며 그러더라고, 그런 얘기를 했다.


몇 개의 회사를 거치면서 느낀 건, 나는 고인 물에 썩은 개구리가 되기 싫다는 생각이었다. 한 회사에 오래 있는 분들은, 자기가 최고였다. 그 회사의 문체에 가장 최적화된 분일 뿐, 최고는 아니라는 게 모두가 아는 생각이다.


안 그런 선배가 물론 대다수지만, 연차가 높은 선배 분들 중 몇 분은 자기 생각만 옳은 자기복제의 달인이었다. 긍정적인 자기복제는 물론 존재하지만, 발제 시간이나 회의 때 하던 것만 주구장창 밀고 가는 이들이 있었다.


이 발제 중 세련되거나 감각이 살아있는 것들을 내밀던 선배들에게는 '역시 괜히 선배가 아니다', '멋있다', '저 선배 밑에 계속 있으면 배울 게 참 많겠다' 등의 생각으로 나는 눈을 빛냈다. 그게 아닐 경우는 당황스러운 공기 속에서 막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 선배 A


자기 말이 최선이라 믿는 한 선배가 있었다. 나는 이 선배의 아이템 선정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선배의 글을 세련됐고, 실제 톡톡 튀는 발제를 해내기 위해 선배가 하는 노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배의 표현은 딱딱했고 좀 무서울 수는 있었지만, 선배는 알고 보면 제일 많이 속깊은 생각을 하는 분이었다.


표현의 방식이 엉망진창이라는 단점은 있었지만 나는 선배랑 있는 동안 많이 배웠다. 그 선배는 무서운 분이 맞지만, 그 선배의 다른 구석에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종종 그 선배를 생각한다. 이 발제엔 그 선배가 뭐라고 했을까 등이다. 선배와 모든 성향이 맞진 않았지만, 그건 선배의 방식이었고, 나는 선배의 그 세련된 아이템 선정능력과 궁리 등을 존경한다.


# 선배(?) B


자기 경험이 최고라는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농담삼아 은수저라 불렸는데, 그건 그냥 회사 특성에서 만들어진 말일뿐 나는 그 선배가 은수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뭘 해줬다 따위의 발언으로 그냥 그 소문이 괜한 건 아니었겠다 싶었을뿐, 여러분도 알다시피 사회엔 부자 근처에 있는 분은 많으니까 그냥 그랬다. 그 선배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냥 시간을 좀먹어 선배가 되고 연차가 높아졌을 뿐이라는 걸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논하는 선배들은 문제의 조직은 제외하고 말하는 중이라서, 마초나 그 반대의 극에 계신 분들은 제외하고 말하는 중이다. 평범한 일상 속 분들에 대해 논하는 중이니까.)


어쨌든 '이 선배처럼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분이었다.


선배 역시 그걸 알았는지, 본인 기사를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쓰는 일은 손에 꼽았다. 내가 대신 써주기도 했고. 이 '대신 써줌'은 이 선배 말고도 몇 분 계셔서 이 선배만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좀처럼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몰라서, 다른 선배들은 종종 내게 'ㅇㅇ는 뭐하고 있냐'고 묻곤 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지만.


#.


이 마지막 문단에 등장하는 조직은 구악의 끝판왕 조직이었다. 외부 평가는 좋았지만 안은 썩을 대로 썩어서 뭐가 썩은 건지 구별이 안 되는 조직이었다. 냄새를 맡은 이들은 도망치기 급급했지만 뭐 어떤 신념을 가졌다면 나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이런저런 추행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조직에 있는 동안 너무 절망한 기억밖에 없어서, 발젯거리로 기본권 등을 논하는 선배들을 보면 이게 현실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단톡방에 모 항공기 사건의 캡처 사진을 올리며 야한 말을 하던 모 구악 선배의 행동에 기절초풍했지만, 캡처해두고 분을 삭히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거기선 그런 게 당연했고, 반응하면 '예민충'이 돼 문제사원이 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그 회사의 실체는 지금에야 조금 까발려지는 모양이지만, 그 안의 이들이 뭔 말을 하고 뭔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 절망스럽다.


#. 그래서?


첫 번째 선배의 경우 나는 긍정적인 꼰대(?)라고 본다. 선배의 정치색은 짙었지만, 그런 대화를 안 하면 그만이었다. 선배가 ㅇㅇㅇ 시장을 욕할 때면 마음 속으로 욕이 치밀었지만, ㅇㅇㅇ 발제를 하고 불려가 크게 혼나고 정치색을 맞추라 조언 들었지만, 나는 ㅇㅇㅇ 선배에게 글을 배웠다. 그것만 지니면 된다. 다른 건 선배의 몫.


두 번째 선배는 왜 있는지 모를 꼰대다. 그저 오늘을 사는 회사원에 불과하다. 정치색도, 어떠한 반성도 없는, 언론인이라 부를 수 없는 그저 한 사람. 그러나 그 선배도 필요한 존재일 테다. 그냥 엄격한 기준으로 보자면 생활인이라는 것이다. 근래의 생활인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테다. '존버'가 유행인 시대 아닌가. '존버'도 힘든 거라는 게 그 선배를 보며 든 생각이다. 자신의 쓰임을 고민하실지는 내가 감히 논할 바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소굴의 경우 그 동생이 말한 꼰대가 맞는 것 같다. 열린 체는 하지만 가장 나쁜 건 그들이다. 첫 번째 선배의 정치색이 기본권과 멀긴 했지만, 기본권을 이용해 장사는 안 했다. 약자의 편인 체 장사하는 게 나는 더 나쁘고 악취 난다고 생각한다.


#.


아무튼 돌아와서, 그 귀엽고 여리디 여린 동생이 '그런' 조직에선 기자를 안 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위와는 별개의 내용인데, 내 새끼(?)라면 이걸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새끼(는 아닌데 아무튼 친밀한 이?)가 어디 가서 나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간절하다. 내 새끼 같은 애들(?)이 들어왔을 때 당연히 그런 일을 안 당할 수 있도록, 나는 이 바닥에서 계속 기사를 써낼 거다. 기댈 수 있는 여선배 하나 없던 그 구악 조직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 생각을 더 강하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적왕'이 될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