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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Feb 14. 2018

유튜브가 위험하대

"그래도 지금 어린 아이들이 크면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최근 만난 이들과 어떤 대화에서 어린이의 손을 들었는데, 반론으로 유튜브의 존재가 나왔다. 아주 어린 학생들이 일부 유해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그대로 배운다는 얘기다. 크리에이터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건 알았으나 어둠의 구석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런 콘텐츠에 도저히 손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근데 그걸 어린이들이 본다고?


이건 그냥 '아이 충격이야!' 끝낼 일이 아니다. 콘텐츠 하나가 가진 파급력은 나도 당신도 알 테다. 온갖 게임시장과 판타지, 나아가 굿즈들이 활황기를 맞은 건 수요가 있기 때문 아닌가. 어린 시절 본 공주와 마법사의 기억은 '덕후'를 양산한다. 돈 버는 덕후들은 주저없이 구매를 택한다. 별 이유가 없다. 익숙하고 좋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 사람의 기억에 큰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의 시작이 그런 데서라고 생각한다면, 암담하다.


언제든 반에서 한두 명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는 있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소수가 영상을 보고 따라한다는 주장이다. 예전엔 우리 눈으로만 보고 '에잇!'하고 말 수 있었다면, 근래는 좀 다른 것 같다. 자기들이 행동을 하고 영상을 찍어 공유한단다. 별세상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 '자기 얼굴 내보내고 자기가 편집하고 어떻게 그래' '나는 누가 볼까봐 좀 그래' 하던 고민이 누군가들에게 당연하던 유튜브 세상이, 네이버 블로그가 활황이던 시절처럼(데일리룩을 기억하는가?) 그냥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냥 내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세상에선 위의 걱정이 증폭된다. '에잇 내 눈! 안 봤다 치면 그만이지 뭐' 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거다. 부적합한 콘텐츠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그들이 하는 말이 초등학생 사이에서 널리 유행어가 되는 현실이라니. 나는 지난주 퇴근 후 늦은 저녁 오랜만에 ㅇㅇ역엘 갔다. 우르르 몰려가는 학생들은 유튜브 용어를 따라 말하고 있었다. 표준어도 욕도 아니지만 묘하게 이상한 말이었다. 나에겐 충격. 그러나 그들에겐 일상에서 하는 대화일뿐이었다. "허세 부리지 마"라고 할 대상이 아닌 정말 뿌리깊게 내린 단어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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