띡, 와이파이가 끊기는 바람에 잡념이 파고 들어왔다. 삼국지를 보며 그린 상상이 맥없이 풀렸다. 내가 있는 카페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와서 앉은 후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아 모르던 광경을 눈에 스치듯 찍어낸다. 매번 명절은 소란스럽고 아프다는 걸, 애써 잊고 있었던 게 자라 현실로 나를 내리 누른다. 카페에 오면 안전해진다는 믿음 덕분일까,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찾았을 책펴든 이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속이 메슥거린다. 목이 아픈 채 계속해서 집중했기 때문인지, 우연히 또 이 사단이 난 와중에 하필 읽을 책이 '이상한 정상가족'이어서인지는 모른다. 목에 두른 살색 깁스 보호대(정확한 용어를 모르겠다)는 목을 조이고 당이 당겨 주문한 캬라멜 케이크 한 조각은 껍데기만 남았다. 가르마를 바꾼지 석 달 여, 퇴근 시간 달려간 미용실에서 부랴 끝에만 자른 장발의 머리가 오늘따라 무겁다. 목이 제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 해가 꺼진 저녁이지만 카페 안은 햇살이 비추는 일요일 오전 열한 시처럼 따뜻하다.
와이파이가 자주 꺼진다. 이 카페는. 24시간 카페가 없어 가장 늦게까지 연다는 이유로 이 곳을 찾을 수밖엔 없다. 음료든 뭐든 많이 시킨다. 오래 있으니까. 이 곳에 오면 시간이 가는줄을 모른다. 이 일 저 일, 집에선 할 수 없는 내 생활을 누리다 보면 '꽤 제대로군' 따위의 생각이 든다. 카페는 역과 아파트의 가운데에 위치했다. 스타벅스보다 넓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넓다. 음료 값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프랜차이즈 값'이지만 꽤 행복을 주니, 그 값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눈을 감아 피하던 현실은 점점 더 고통스러운 수준이 됐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더 이상 동정할 대상이 아니다. 내 몸에 가해지는 폭력들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극복기가 탄생할 거란 예감이 든다. 모욕에 동의한 적 없다. 피해에만 익숙해 정도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도 어서 떨쳐야 한다. 나는 나일 뿐, 누군가의 복수심, 피해의식, 열등감을 풀 대상이 아니다. 큰 사람이 돼 품자, 누구나 제각각의 고통은 있으니 내가 참자, 참고 살면 복이 온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십수년간. 그 복, 내 목이 부러진 뒤에 오면 아무 소용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