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꿈, 어른

by 팔로 쓰는 앎Arm

나는 내가 평생 타인에게 이해될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다.


언젠가 그건 아닐지 모른다는 꿈을 품은 5년 전의 어느 시점을 넘어, 요즘에 더욱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한 켠에 '그래도...'하는 마음이 있던 게 사실이다. 이젠 0이다. 보통 이렇게 쓰는 건 그걸 원한다는 반증일지 모르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정말 0이다. 결코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으리라. 이해한다 해도 그건 연기이리라. 이해한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리라(부정적인 게 아니라 연기일 가능성 90이라는 것).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누구든 어떤 상황에 처하면 비슷한 선택을 한다고들 생각한다. 내 경우는 꿈이 0순위인 좀 요상한 인간이라 (그 전엔 요상하다고 생각 안 했다. 누구나 꿈이 0순위라고 확신했다.) 그걸 뒷받침해줄 애매한(!) 능력도 있겠다 젊음이란 뒷배도 있겠다, 그러니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꿈을 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개 나는 어떠한 사람이 특정한 꿈을 꾸게 된 데는 실현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겠는데?" 하니까 꿈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명의식은 멋지게 붙인 말이고, 대개 자기가 하고 싶거나, 어쩌다 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이 경우도 타인 기준 아니고, 자신 기준에 여러 재능 중 그 재능을 자신이 여러 환경적 이유로 선택하게 된다는 의미다. 뭐 이걸 소명의식이라고 멋지게 부를 수도 있겠다) 하게 된다는 것이다.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남들이 보기엔 좋아보이는 것들을 버리고, 난 본질만 따라 걸었다.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내게 묻는 것이었다. 방 한 칸이라도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저 그 곳이 천국이었다.


그러다 그러한 내 삶ㄷ의 태도가 엉망인 것들도 끌어들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감사할줄 안다는 걸 누군가 알게 되면 그건 곧 약점이 된다. 좀 이상한 세상이지만, 어른의 세상에 입성했으니 그것도 알아둬야 한다.


뭐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내 일기니 삶의 방향키를 세밀하게 조정해가며 주절거리는 것이다. 그래봤자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 달라짐 없음을 위해 키보드를 도닥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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