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이라는 것

by 팔로 쓰는 앎Arm

슬픈 일이 있어도 마음이 비참해진 게 수천 번이라 내 일인 데도 와닿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익힌 방법은 그 옛날 소설의 화자처럼 내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액자식이라기보다는 그냥 뭐랄까 1인칭 화자가 돼 내 일을 받아들이되 매우 건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 지나갈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무뚝뚝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무덤덤은 아니다. 무뚝뚝이다. 그건 큰 차이가 있다.


통나무집에서 글쓰고 살겠다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늘 '지금'이다. 혹자는 급하다거나 왜 그러냐 할지 모르지만 내겐 언제나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 무슨 말이냐면, 미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나는 회의감에 젖어있다. 이 일을 해나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다. 그럴 때면 삶은 고통이며 그것이 당연한 거라는 말이 내게 힘을 준다. 힘을 준다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윤활유가 되어준다.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축복 아니던가. 그걸 되새긴 게 벌써 2년 전이다. 시간이 미친듯이 흐른다. 시간은 늘 쓰는 자의 것이다. 근래 나는 시간을 쓰면서도 온갖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건 내게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별 도리가 없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때론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게 나을 때가 있다.


괴롭고 괴로웠던 과거를 지나면 해피엔딩 같은 건 없다. 그냥 좀 더 견딜 만하다가 또 죽으라고 낭떠러지로 떠밀다가 절벽에 매달려 있으면 가끔 줄을 주는 은인이 있을 뿐이다. 그걸 잡고 올라오는 건 내 몫이다. 어쩔 수 없다. 공평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인 건 꽤 되었으니 곱씹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폭언에 익숙해지는 게 내게 결코 좋지 않음은 알고 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머리를 짓누르는 공포에 시달린다. 생활이 된 것들이라 내겐 아무 것도 아니지만 혹자에겐 또 그렇지 않으리란 걸 안다. 피해당하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에서 나는 늘 그렇듯 입을 다문다. 누굴 설득하려 하나. 아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누구도 타인을 구할 수 없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늘 나뿐이다. 그냥 무덤덤하게 되새기면 될 일이다. 뭐 어쩌자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일기니 적어두는 것이다. 이런 날들이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젊음은 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