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특권

by 팔로 쓰는 앎Arm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상반기가 훌쩍 흘렀다. 인수합병쪽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두 달은 그걸 준비하느라 훌쩍 갔다. 어렵게 확보한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에 썼다. 그리고나서도 두 번이나 같은 제안을 받았다. 이젠 그냥 웃는다. 다시 또 자지 못하고 준비했던 그 시간들은 예전엔 덕분에 뭘 배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젠 그에 더해서 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간 덕분에 얻은 것들을 생각하자고 하는 게 98%인데, 2%의 허무함도 있다. 100%의 확신은 무서운 것이니 이렇게 2%라도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역설적이지만, 과도한 긍정주의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회의적인 인간으로 변할까 두렵다. '작은아씨들'의 조와 '라라랜드'의 미아에 동일시하던 시기를 지나 그런 순간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걸 보면서 '해피엔딩' 혹은 '어쨌든 엔딩' 같은 서사를 실제 삶에 주입시키는 건 역시나 좀 무리수가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치관을 바꾼 게 아니라, 그런 순간을 몇 번이고 견뎌냈는데,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에서 무한한 감사를 느끼는 데 이어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이란 현실이란 싸다구다. 현실이란 싸다구는 별 건 아니지만, 절약을 하다못해 그저 누워서 휴일을 보내야만 통장을 지키는 현실이 십수년째 반복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누일 곳이 있고 내 물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쌓아온 산이 있다. 몇 번이고 내 손으로 무너뜨렸지만, 그래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습게도 그게 나를 지켜주고 있다. 든든한 성벽처럼 말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세상의 증거가 그러하니 그 또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무한한 감사다. 괴로움으로 점철됐던 과거는 지금의 내게 마음 누일 곳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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