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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03. 2018

청소, 사람 하나가 갖는 무게는

생각해보면 집안일만큼 정직한 게 어딨나 싶다. 하루만 먼지를 쓸어내지 않아도 제법 티가 난다. 머리카락, 먼지, 떨어진 음식 같은 것들. 이틀은 더 그렇고 삼일은 더 그렇다. 반복되면 돼지우리가 된다. 이렇게나 정직한 일인데 세상은 가정주부 일을 후려치고 있었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 여성의 정년을 스물여섯으로 하고, 그 이후엔 가정일을 하니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결. 그거, 우리나라에 있던 일이다.


물을 틀고 설거지를 하고나면 또 먼지가 생긴다. 먼지를 닦아내고 좀 쉬려다 싶다가도 먼지는 금방 눈에 띈다.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닦아내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내 공간이라는 안도 덕일 테다. 내 공간, 내가 땀흘려 만든 곳. 그래서 집안일에 몇 시간씩 쓰면서도 꽤 유쾌한 것이리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겠다고 거창한 걸 생각하는 나와 당장 요가와 청소부터 큰 과제로 둔 내가 있다. 많이 나아졌고, 많이 치유됐다. 또 얻은 건 공감대라는 건 꽤 중요하다는 사실. 사실 또래와 대화하는 것보다 언니와 대화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했던 이유는 바로 그 간단한 공감대의 유무에서 왔다는 것. 누구가 나빠서가 아닌, 환경과 처한 지위나 기타 여건이 달라진 사람들의 대화는 어쩔 수 없다. 한 사람의 양보가 지속되다 끊어지는 것.


때로 냉정한 듯 해보여도 굉장히 여리다. 그래서 더 냉정해진다. 여리고 상처받아봤자 세상은 혼자 사는 곳. 그 적정선을 찾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아마 평생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착한 체하곤 상처받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멍청하니까.


화장실 청소, 방청소, 물건 배치, 버리는 일. 가장 기본이다. 뭐든 잘 버리는 것도 재주고 가진 걸 잘 배치하는 것도 재주다. 꽤 즐거운 물냄새 속에서 이런저런 상념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오늘만 있을 뿐이다. 땀이 줄줄 흐르도록 청소를 하고나면 또 새 세상이 열린다. 이 좋은 걸. 더 자주 해야지. 사람 하나가 갖는 오롯한 무게를 아주 잘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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