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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05. 2018

그 XX는 말이야

그 회사는 말이야. 겉으론 기본권을 부르짖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믿기엔 내가 아직 어린가봐. 좀 더 늙으면 그러겠지. 그나마 그런 곳이라도 있다는 게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나마 나은 거라고. 그런 데라도 없다면 세상엔 정말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곳이 없을 거라고. 그런 늙은이 좀 먹는 소리를 해댈지도 모르지. 근데 지금은 아냐. 나는 아직 어리니까 좀 순진한 얘기를 해볼게.


온갖 정의로운 척을 해대며 각종 상을 받고 약자의 목소리를 직접 담겠다는 방송을 하지. 그리고 꽤 잘 먹혀들어가는 프로그램도 있고. 사람을 위한 가치인데. 뭐가 문제냐고? 사람을 위한 가치가 사람을 내리치고 있으니 문제야. 그 가치라는 걸 지키기 위해 사람을 뭉개고 있지. 성희롱, 성추행? 그래 백 번 양보할게. 정규직 고용된 후라면 또 다른 세계 얘기라는 네 주장. 또, 피해자가 선 곳이 어디냐, 그가 가진 여유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성추행의 범위가 바뀐다는 네 주장. 주장이라는 단어 붙여줘도 될 지 모르겠네. 단어가 아까워서.


그 회사는 말야. 상여금 제외한 최저임금 지켜달라고 뭔 시위를 그렇게들 또 한다네. 그런데 그거 앎? 거기에 동원되는 깃발 든 사람. 정규직일까? 회사 정규직 직원님들은 바빠서 못 들고 가는 그 물건, 그 사람한테 맡겨버렸대. "이것 좀 들고 가요." 당장 계약 만료가 코앞이고 못다 이룬 꿈에 바쁜 그 사람은, 어찌 됐든 직접 고용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그걸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대. 근데 그거 앎? 계약 만료가 결정되자 남일처럼 부르더니 하는 말이 결국은 직접 고용은 안 된다는 것.


그거 앎? 내 얘기는 아닌데, 내가 왜 또 어이가 없어서 키보드를 도닥이고 있는지. 나는 용기가 없어. 그래서 내 얘기는 꺼내지 못했지. 지금도 그래. 말이란 건 발을 달고 달리다가 곧 날개를 달고 날지. 그러다 보면 형체는 사라져. 진짜는 없어지는 거야. 내 얘기를 꺼내지 못한 후회를, 그냥 이렇게라도 풀고 싶어. 나는 알아. 공채를 뚫는 건 힘들었어. 정규직이 되는 것도 말야. 근데 말야. 나는 그걸 정직하게 말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 쓸데없는 희망팔이할 자격은 공채 뚫었다고 해서 갖는 게 아니야. 우리 또는 너한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네가 한 그 거짓 사탕발림이 어쩌면 또 다른 기회를 날린 결정적 일이 됐을지 모르거든.


봐, 난 이제 늙어버렸어. 예전 같으면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그러니 네가 속은 것도 너의 바람에 네가 속은 것일뿐, 너 스스로 선택을 한 거다. 그러니 시간을 열심히 보내면 나중에 또 다른 보상이 올 것이다. 따위의 말을 했겠지. 난 이제 안 그래. 그래서 난 네가 그런 자리 따위, 박차고 나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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